23andMe가 결국 파산하였습니다. 개인 유전 정보 분석 서비스의 시초이자, 대표적인 회사이며, 그 이름 자체로 상징성을 가진 23andMe는 지난 2025년 3월 23일 자산 매각을 시작하기 위해서 Chapter 11 파산 보호를 신청했습니다. 이 회사의 공동 창립자이자 CEO인 앤 워짓스키(Anne Wojcicki)는 CEO직에서 사임하고, 23andMe의 자산을 매수하기 위한 독립 입찰자가 되겠다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이 회사는 그야말로 ‘DTC 개인 유전 정보 분석 서비스’ 시장 자체를 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너무도 큰 상징성을 지닌 회사입니다. 제가 2013년 무렵 한국에 디지털 헬스케어를 소개하면서, 제 블로그에서도 여러번에 걸쳐서 23andMe를 자세하게 다루기도 했고, 제 졸저인 ‘헬스케어 이노베이션‘과 ‘디지털 헬스케어: 의료의 미래‘에 별도의 챕터로 다루면서 (23andMe의 연대표까지 작성하면서까지) 상세하게 분석했던 회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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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andMe의 짧은 연대기
23andMe는 ‘개인들이 직접 건강 데이터를 소유할 수 있게 하겠다’는 미션으로 일찍이 2006년에 창업하여 DTC (Direct to Consumer), 즉 병원을 방문하지 않고서도 개인 소비자들에게 직접 유전 정보 분석 서비스를 고집했던 대표적인 회사입니다. 타액을 통해서 유전 정보를 분석하여, 다양한 질병의 위험도, 보인자 (carrier status) 분석, 약물 민감도 및 (흥미 위주의) 건강 분석, 그리고 혈통 분석 등을 제공했습니다.
특히 질병의 위험도 분석 등에 대하여 DTC 판매 방식을 고집한 것 때문에 2013년 FDA로부터 판매 중지 명령을 받는 등의 고초를 겪지만, 이후 다시 차근차근 FDA에서 요구하는 수준으로 서비스를 발전시켜 인허가를 받으면서 (참고 1, 참고 2, 참고3), 사업을 유지해왔던 뚝심과 저력을 보여준 회사입니다.
미국을 중심으로 이 서비스는 큰 인기를 끌었고 (특히 다인종 사회인 미국에서 혈통 분석이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앤 워짓스키가 창업 당시부터 공공연하게 밝혔던 목표인 ‘1000만 명의 유전 정보를 분석하는 것’을 창업 이후 13년만인 2019년에 달성하게 됩니다.
뿐만 아니라, 이 회사는 여러 혁신적인 사업 모델을 보여주면서 주목 받기도 했습니다. 타액을 통해 유전 정보를 분석하는 서비스를 제공하였을 뿐만 아니라, 고객들에게 ‘인류를 위한 연구에 사용한다’는 목적으로 질병력을 포함한 건강에 대한 정보까지 ‘기부’를 받아서 세계 최대의 유전형(genotype)과 표현형(phenotype) 데이터베이스를 보유하게 되었습니다. 고객들 중 80%가 이런 기부에 응했다고 하니 대략적인 숫자를 추정해볼 수 있습니다. (저도 제 데이터를 기부했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파킨슨병 등 난치병에 대한 신약 개발을 목적으로 제넨텍과 화이자에 이 데이터베이스를 판매하거나, 2018년에는 GSK에 자사의 유전 정보 데이터베이스에 대한 독점적 접근권을 주고 3억 달러의 투자를 받기도 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개인 고객들이 기부한 유전 정보를 제약사에게 판매하는 것에 대한 윤리적 문제 제기가 있었습니다.) 이후에는 아예 23andMe가 스스로 신개념 제약사가 되어서 유전 정보를 바탕으로 신약을 개발하겠다고 발표하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새로운 시장을 새로운 방식으로 개척해오면서, 한 때 회사의 가치는 60억 달러에 달했고, Sequoia Capital, Illumina, NEA 등 수십 곳의 유수한 투자자로부터 14억 달러 이상의 투자를 유치했습니다. 이 회사의 창업자이자 CEO인 앤 워짓스키는 분야를 대표 혹은 상징하는 아이콘과 같은 인물이 되었습니다.
23andMe의 창업자, 앤 워짓스키
하지만 2021년에 상장을 한 이후에 시장이 기대하는 수익 창출에 실패하면서, 한 때 60억 달러에 달했던 기업 가치가 99% 이상 폭락했고, 이때부터 상장폐지나 비상장 회사로의 검토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2023년에는 대규모 사이버 공격을 받아서 약 700만 명의 고객 데이터 (유전 정보와 조상 보고서를 포함한 정보)가 해커에게 탈취되었고, 2024년 9월에 이 데이터 유출과 관련된 소송을 합의하여 마무리하기 위해서 3천만 달러를 지출했습니다.
또한 2024년 11월에는 자체적으로 신약 개발을 진행하던 노력을 중단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신약 개발 부서를 폐쇄하고, 200명의 직원을 해고한 것입니다. 이런 감원을 통해서 비용을 줄이고자 했지만, 결국 파산이라는 결말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평생 한번만 하는’ 분석이, 정말 문제였을까
그렇다면 무엇이 문제였을까요. 23andMe는 창업 이래로 거의 20년에 걸친 세월 동안 수많은 우여곡절을 겪은 회사이기 때문에, 이를 영화나 넷플릭스 드라마 시리즈로 만들어도 될만큼 다양한 일을 겪었습니다. (위워크 같은 곳처럼 대표가 괴짜이거나, 드라마틱하지는 않지만 언젠가 정말 드라마로 나올지도 모르는 일이지요.) 때문에 이 회사의 실패 요인을 한두 가지로 요약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일각에서는 ‘유전 정보는 평생 단 한 번만 분석하기 때문에’ 이 회사가 실패했다고도 언급합니다. (이 WSJ 기사를 포함하여 국내 언론에서도 이런 분석을 하기도 합니다.) 사람의 유전 정보는 평생 (거의) 바뀌지 않기 때문에, 유전 정보 분석 서비스는 반복 구매가 성립하지 않는 비즈니스라는 것이지요.
사실 유전 정보 분석 서비스에 반복 구매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것 자체는 틀린 이야기는 아니지만, ‘평생 한 번만 구매하는’ 서비스 중에서도 성공적으로 운영되는 반례들은 얼마든지 떠올릴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결혼과 관련된 산업군이나 (두 번 이상 결혼하는 사람도 있겠지만요), 출산, 장례, 내집 마련 등등은 보통 사람들은 한 번 혹은 적은 횟수로 구매하게 됩니다. 하지만 이들은 모두 거대한 규모의 산업군을 형성하고 있지요. 중요한 것은 이것을 왜 구매하고, 구매함으로써 어떤 가치를 얻게 되느냐일 것입니다.
So What 에 답변할 수 있는가
제가 보는 23andMe의 가장 큰 문제는 So What? 에 답변할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유전 정보 분석을 하면, 내 조상 분석을 통해서 혈통을 알 수 있다든지, 내 소변에서 아스파라거스 냄새가 날 것이라든지 등의 흥미로운 정보를 알 수 있었지만, 내 건강에 대하여 ‘행동으로 옮길 수 있는 (actionable)’ 실질적인 정보는 얻기가 어려웠습니다. 극히 일부의 질병과 관련된 유전 정보의 분석에는 (안젤리나 졸리의 사례와 같이) 예방적으로 행동에 옮길 수 있는 경우가 있지만, 대부분의 경우에는 내가 더욱 건강해지기 위해서 특별한 정보를 얻기가 어렵습니다.
예를 들어, 저는 23andMe의 분석 결과, 부정맥의 일종인 심방세동과 제 1형 당뇨, 제 2형 당뇨의 가능성이 높다고 나옵니다. 하지만 이런 질병들을 예방하기 위해서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운동을 꾸준히 하고, 건강한 음식을 먹는 등의 생활 습관을 유지하는 정도밖에 없습니다. (실제로 23andMe의 분석 결과에 이러한 권고가 등장합니다.) 하지만 이는 굳이 돈을 내고 유전정보를 분석해야만 알 수 있는 것은 아니지요.
즉, 23andMe의 서비스는 So What? 에 답할 수가 없었습니다. 제가 항상 강조하는 것입니다만, 헬스케어에서 데이터를 측정만 하는 것 자체로는 의미가 매우 제한적입니다. 그러한 데이터를 기반으로 실질적으로 건강을 증진할 수 있고, 개인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해결책, 즉, So What? 질문에 대한 답이 있을 때 비로소 고객, 혹은 보험사가 지갑을 열 수 있습니다. 만약 23andMe가 막대한 자금을 통해서 이러한 질문에 답할 수 있는 부가적인 서비스를 만들어낼 수 있었다면, 비록 유전 정보 분석은 ‘평생 단 한 번’ 한다고 할지라도, 사용자들이 이 유전 정보에 기반한 추가적인 서비스를 더 구매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예를 들어, 23andMe가 보유한 다양한 인구 집단이나 질환을 대상으로 한 진단 시장으로 진입하거나, 비만, 당뇨 등의 만성 질환이나, (요즘 유행하기 시작하는) 장수(longevity) 관련 시장, 혹은 여성 건강 시장 등으로 확장해볼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또한 유전 정보에 그치지 않고, 마이크로바이옴 분석 등으로 확장할 수도 있었겠지요.
그동안 23andMe가 14억 달러라는 천문학적인 금액을 조달했다는 것을 떠올려보면, 이런 일을 충분히 할 수 있는 재정적인 능력이 있었다는 것은 자명합니다. 하지만, 23andMe는 원격진료 회사인 레모네이드 헬스를 $300M에 인수하거나, 신약 개발을 위해서 다국적 제약사와 협업을 진행하고, 더 나아가 자체적으로 신약 개발을 추진하면서 일종의 제약사가 되는 길을 택했습니다. 더구나, 자체적으로 개발하려 했던 신약은 면역항암제입니다. 면역항암제는 다른 신약에 비해서 대규모의 임상 시험이 필요하여, 더 많은 비용과 시간이 들어가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결국 23andMe는 이 신약개발에서 성과를 내지 못하면서 사세가 기울게 되었습니다.
지나치게 투자를 많이 받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23andMe는 왜 ‘So What?’에 대한 답을 내어놓는 서비스를 개발하는 대신에, 원격진료 회사를 인수하거나, 자체적으로 신약개발을 추진하는 전략을 택했을까요? 여기에 대해서, 미국의 디지털 헬스케어 분야의 전직 기자이자, 투자자이기도 한 Christina Farr는 ‘지나치게 투자를 많이 받았기 때문’이라는 흥미로운 분석을 내어놓았습니다. 제가 23andMe의 파산에 대한 몇가지 아티클을 읽어보았습니다만, 이 아티클이 가장 재미있었습니다.
23andMe는 지금까지 무려 14억 달러, 한화로 약 2조원 이상의 천문학적인 투자금을 유치했고, 이에 따라 시가총액은 한 때 60억 달러에 달했습니다. 이 정도의 기업가치를 정당화하고, 주주들의 기대에 부응하려면 무엇인가 ‘큰 것’을 해야 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새로운 면역 항암제를 개발하는 것 정도가 이러한 어마어마한 기대 수준에 응할 수 있다는 것이지요.
약간 쌩뚱맞게 느껴질 수도 있는, 원격의료 회사 레모네이드 헬스를 2021년에 인수한 것도 그러한 기대에 부응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당시는 코로나 판데믹이 한창이던 시기로 원격의료에 대한 기대감이 하늘을 찌르던 시기였으므로, (완벽히 딱 들어맞지는 않지만) 유전 정보에 기반한 원격진료.. 라는 새로운 개념을 구현하기 위해서 원격의료 회사를 인수한다는 전략을 실행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실제로 23andMe 내부에서 여러 새로운 사업에 대한 가능성이 제기되었지만, 시장 크기가 충분히 크지 않다는 이유로 폐기되었거나, 인재들이 회사를 이탈하여 새로운 창업으로 이어진 경우들이 있었다고 합니다. 예를 들어서, Modern Fertility는 여성들이 가정에서 AMH 검사 (소위 난소 나이 검사)를 통해서 가임력을 알려주는 검사를 제공하는데, 이 회사가 23andMe에서 이탈한 인력에 의해서 창업했다고 합니다. 23andMe 내부에서도 이런 서비스를 개발할 수 있었겠지만, 60억 달러의 시가총액을 정당화하기 위한 ‘큰 것’으로는 아무래도 부족했을 것입니다.
혹은 최근에 주목받기 시작한 장수(longevity) 산업 쪽으로도 23andMe가 유전 정보를 바탕으로 진출할 수도 있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 역시 아직까지는 시장 크기가 크지 않을 뿐더러, 이 분야가 주목 받기 시작한 것이 비교적 최근의 일이므로, 시장의 타이밍이 맞지 않았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참고: 저희 DHP는 최근에 이 분야에 관심이 많이 있는데, 국내에서 이 장수 분야 쪽으로 스타트업을 창업한 분이 계시면 꼭 연락주시기 바랍니다: 링크)
Christina Farr는 이런 흥미로운 이야기를 합니다. 23andMe가 파산했기 때문에, 오히려 워짓스키가 원래 추구하던 미션, ‘소비자들이 자신의 건강 정보에 접근권을 가지고, 이를 해석할 수 있는 도구를 제공한다’는 것을 더 자유롭게 추구할 수 있게 되었다고 말입니다. 즉, 너무 큰 자금을 조달하여, 그 기대에 부응하기 위한 무리한 일을 추진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지요. 이는 외부의 자금을 조달하는 다른 창업자들에게도 교훈이 될 수 있는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 시장에서는 소위 유니콘 기업에 대한 찬사가 있지만, 유니콘 기업이 되면 그 무게를 견디기 위한 일을 해야 하는 법입니다.
업계에 타산지석이 되기를
23andMe는 Chpater 11 파산 보호를 신청했지만, 아직 이 회사가 완전히 실패한 것인지는 아직 결론이 내려지지 않았습니다. 앤 워짓스키가 개인적으로 회사를 인수하겠다고 했다가 이사회와의 갈등을 겪으면서 거절당한 이후, 여전히 강력한 인수 의지를 가지며 독립 입찰자 자격을 위해 CEO 직을 내려놓기까지 했으니, 이후에 어떻게 진행될지 지켜볼 일입니다. 한 편으로는 23andMe에 유전 정보와 질병력 등을 ‘기부’했던 개인 고객들이 제3의 인수자에게 데이터 소유권이 넘어갈 상황에 처하면서 본인 데이터의 파기를 요청하는 등의 복잡한 이슈가 얽혀 있기도 합니다.
여하튼, 하나의 분야 자체를 개척하고, 한 시대를 풍미한 또 하나의 회사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가는 것을 보는 마음이 그리 편하지 않습니다. 저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애정을 가졌던 기업이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23andMe의 시행착오에서 후배 기업들이 반면교사, 타산지석의 인사이트를 얻어서, 더 성공적인 기업이 더 많이 나오는 밑거름이 되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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