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최근 머니투데이에 기고한 칼럼의 원문입니다. 분량 제한 없이 쓴 원문을 올려드립니다.
복지부와 식약처는 디지털 헬스케어 분야에서 최근 몇년 동안 선제적인 규제 개선을 통해서 생태계 전반에서 호평을 받고 있다. 인공지능 등 디지털 기술의 폭발적인 발전이 의료에 적용되어 근본적인 혁신이 일어나면서, 기존의 의료기기 규제 방식이 신개념의 의료기기의 허가심사에 적절하지 않은 경우가 많아졌다. 이에 의료 인공지능, 디지털치료기기, 3D프린팅, VR 등의 디지털 헬스케어 분야에서 식약처는 발빠르게, 심지어 미국 FDA 보다 더 빠르게 선제적으로 합리적인 규제 가이드라인을 내어놓으면서 업계의 호평을 받았다.
복지부와 식약처는 최근 또 하나의 의료기기와 관련한 과감한 규제 개선책을 내어 놓았다. 바로 혁신적 의료기기가 인허가를 받은 이후에, 시장에 더욱 빨리 진입할 수 있도록 하는 ‘시장 즉시 진입 가능 의료 기술’ 경로를 신설하겠다고 발표한 것이다.
다른 분야의 제품과는 달리, 의료기기는 특이하게도 인허가를 받았다고 해서 시장에 진입하여 판매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더 정확히는 의료기관 등에서 사용할 수는 있으나, 이에 대해서 국민건강보험이나 환자에게 돈을 받을 수 없다. 보험급여를 받거나 환자에게 과금을 하기 위해서는 이 기술이 기존 보험 급여 기준에 해당하는지 (기존 기술 여부 검토(30-60일)), 기존 기술이 아니라면 건강보험을 적용할만한 가치가 있는 새로운 기술인지 (신의료기술평가(~250일))를 추가로 받고, 건강보험에 등재하는 과정(100일)이 필요했다.
이렇게 의료기기 인허가를 받은 이후에도 시장 진입을 위해서 추가적인 평가를 거치기 때문에 새로운 기술의 안전성, 유효성, 비용효과성은 높게 보장할 수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혁신적인 의료 기술 발전의 혜택을 환자에게 전달하는 것이 늦어지고, 관련 기술의 발전을 저해하며, 관련 기업의 성장이 느려지고 글로벌 경쟁력이 저하된다는 지적이 이어져 왔다. 이에 복지부는 혁신의료기기통합심사평가, 신의료기술평가 유예제도 등을 최근 신설하여 혁신적인 의료 기술의 안전성과 유효성은 보장하면서도, 시장 진입을 가속화를 지원해왔다.
이번에 신설하는 ‘시장 즉시 진입 가능 의료 기술’은 이러한 기존의 제도들에 비해 한걸음 더 나아간 파격적인 제도이다. 의료기기로 허가심사를 받으면, 이후 기존 기술 여부만 확인 받고, 즉시 시장에 진입하여 3년 동안 환자에게 비급여로 과금하는 것이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물론 모든 의료기기가 아니라, 새롭고 혁신적인, 독립적인 활용도가 높은 일부 의료기기를 선정하여 적용할 계획이며, 인공지능 진단보조기기, 디지털치료기기 등을 검토 중에 있다고 한다.
산업계의 입장에서는 크게 환영할만한 소식이다. 항상 큰 고민이었던, ‘혁신적인 의료기기를 개발하고, 허가를 받았고, 돈을 내겠다는 사람이 있어도, 판매를 할 수가 없다’는 딜레마를 타개할 수 있는 또 하나의 길이 열렸기 때문이다. 특히, 작년 복지부의 발표처럼, 국가적으로 디지털 헬스케어 산업을 육성하겠다는 정책이 실질적으로 효과를 발휘하려면, 정책적인 우선 순위를 높여야 하고, 무엇보다도 인허가 이후의 시장 진입 관련 옥상옥 규제의 개선이 필요하다고 주장해온 필자로서도 이번 제도는 무척 반가울 수밖에 없다.
다만, 이러한 규제 완화가 효과는 극대화하고, 부작용은 최소화하려면 역시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 예상되는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해서 복지부는 이미 관련 고려 사항들을 미리 밝히고 있다. 어떤 범위의 의료기기에 이 제도를 적용할 것인지, 의료기기의 현장 사용 시에 무엇보다 중요한 안전성 검증을 어떻게 더 철저하게 할 것인지, 시장 진입 이후에 안전성을 어떻게 모니터링하여, 위해 수준이 높은 기술은 시장에서 퇴출하겠다고까지 언급한다. 또한 비용부담이 높은 기술은 직권으로 조기에 신의료기술평가를 실시하겠다고도 한다.
산업계의 입장에서 규제 완화는 반가운 일이지만, 이것이 궁극적으로 환자에게 의학적 가치를, 안전하게, 비용효과적으로 제공할 수 있어야 이런 규제 완화도 지속가능할 수 있다. 필자가 독일의 의료기기 관련 규제 혁신을 보면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 중의 하나는 시장 진입을 빠르게 하는만큼, 시장 퇴출도 과감하게 시킨다는 것이다. 2019년부터 시행 중인 독일의 DiGA는 디지털 헬스케어 앱이 의료기기로 인허가를 받으면, 즉시 12개월 동안 보험까지 적용해주는 파격적인 제도이지만, 그만큼 사후 평가를 통해 안전성 및 유효성, 비용효과성이 충분하지 않으면 퇴출도 매우 과감하게 시키고 있다. 이번 새로운 규제 완화 정책도, 개발사에 큰 혜택을 주는만큼, 그에 맞는 높은 기준과 책임을 부과하는 것이 이러한 규제 완화가 궁극적으로 목표로 하는 바를 이루기 위해서 중요하다
마지막으로, 식약처와 복지부 등 관련 부처에 인력과 예산 등의 리소스도 충분히 지원되어야 한다. 시장에 조기진입하는 기술이 많아질수록, 의료 현장에서 이 기술의 안전성, 부작용, 사고 뿐만 아니라, 비용과 관련한 모니터링에 대한 부담이 계속 누적되게 된다. 최근 의료기기 규제에서 많이 강조되는 TPLC (Total Product Life Cycle)의 기조에 따른 것으로, 이는 예전보다 더 많은 관리감독 인력과 예산이 필요하다. 이러한 규제 개선이 실질적으로 잘 수행되기 위해서는, 인력과 예산이 필요하므로 복지부와 식약처의 수준을 넘어선, 기재부(예산)와 행안부(인력)의 지원이 필요하다. 다시 강조하지만, 정책적 우선순위를 높이기 위해서는 관련 부처의 지원이 함께 동반되어야 한다.
디지털 헬스케어 기술 혁신에 발맞춰 진행되고 있는 이러한 규제 개선이 잘 시행되어, 환자에게 의료 기술 혁신의 성과를 조기에 전달할 뿐만이 아니라, 관련 기술과 산업의 발전도 촉진할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