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디지털 헬스케어 업계에서는 충격적이고도 안타까운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바로 디지털 치료제 분야의 선구자이자, 나스닥 상장 기업인 아킬리(Akili)가 Virtual Therapeutics라는 업계에 거의 알려지지 않은 무명의 회사에 단돈(?) $34M에 매각된다는 것이었습니다.
Akili는 디지털 치료제라는 용어가 업계에서 널리 사용되기도 전인 2011년에 일찍이 창업하여, 페어 테라퓨틱스와 함께 디지털 치료제 분야 자체를 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상징적인 회사인데요. 페어 테라퓨틱스가 지난 2023년 초에 파산한 것에 이어서, 아킬리도 헐값에 매각되면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페어의 지재권이 뿔뿔히 팔린 것과는 달리, 아킬리는 Virtual Therapeutics의 자회사가 되어서 일단 서비스는 계속하게 됩니다.) 페어 테라퓨틱스의 파산도 충격적인 소식이었습니다만, 아킬리의 매각 역시 디지털 치료제 시장에 미치는 파급효과가 적지 않을 것입니다.
디지털 치료제의 상징적 존재
사실 Akili는 저희 디지털 헬스케어 분야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분들이면 굳이 소개가 필요 없는 회사입니다. 이 회사는 게임 기반의 아동 ADHD 환자들의 집중력을 높여주는 치료용 소프트웨어 의료기기를 개발해서 2020년 FDA로부터 De Novo 인허가를 받았습니다. 즉, ‘세계 최초로 처방을 받아야 사용할 수 있는’ 게임을 개발하게 되었지요. 이 게임은 EndeavorRx라는 제품명으로 시장에 출시되었습니다. 하지만 이후 보험사 등 적절한 지불자(payer)를 찾지 못하면서 사업 성과는 지지부진 했습니다.
회사는 SPAC 상장으로 2022년에 나스닥 시장에 상장을 하게 됩니다. 이는 Pear Therapeutics에 이어서 디지털 치료제 업계 두 번째 상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실적 부진으로 상장일에 $14 정도까지 올랐던 주가가, 이후 약세를 면하지 못했는데요. 2023년 후반부터 $1 이하로 내려가게 되자,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로부터 2023년 10월에, “2024년 4월 22일까지 최소 10거래일 연속으로 주가를 $1 이상으로 회복” 해야 한다는 notice of delisting을 받기에 이릅니다.
시장에 출시한 EndeavorRx는 의사의 처방을 받고 환자가 사용하는 모델이었는데, 지불자를 구하지 못하면서 시장 성과는 계속 지지부진했습니다. 이에 아킬리는 B2C 모델인 OTC (Over-the-Counter) 시장에서 돌파구를 모색하게 됩니다. 코로나19의 Public Health Emergency 사태에 따라서 FDA는 정신 건강에 대한 디지털 치료제는 인허가를 면제 받고 시장에 출시가능하도록 한시적으로 허용해 주었는데요. 이에 아킬리는 2022년 6월 EndeavorRx의 B2C 모델인 EndeavorOTC를 시범적으로 출시합니다. 사용자가 (의사의 처방 없이) 직접 앱스토어에서 유료로 앱을 다운로드 받는 이 방식은 오히려 처방 모델보다 단기간에 더 큰 성과를 내게 됩니다.
OTC 모델로의 변화와, 그 이후
EndeavorOTC는 출시 후 3개월 동안, 125,000 의 최초 다운로드, 4,170명의 유료 구독자, $81.88 ARPU 등의 성과를 보였는데요. 이는 그동안 공들여서 사업을 진행해오던 기존 메이져 프로덕트이던 EndeavorRx의 지난 2분기 성과를 뛰어넘는 것이었습니다. 당시 인베스터 콜에서 CEO Eddie는 이런 DTC 판매를 통해서 중간자 (결국 보험사..)를 건너뛰고 환자에게 직접 접근할 수 있다는 점을 가장 크게 이야기하였습니다.
그 결과 아킬리는 2023년 9월에 처방 모델을 버리고, 이 OTC 모델로 완전히 피봇팅을 하게 됩니다. 그와 동시에 회사 인력 중에서 40%를 해고한다고 밝혔습니다. 이는 2023년 1월에 직원의 30%를 해고한 이후에 또 다른 해고였습니다. 처방 모델을 유지하려면 아무래도 보험사, 의사 등을 설득하기 위해서 더 많은 인력과 리소스가 필요한데, OTC 모델로 전환하면서 이런 리소스를 줄일 수 있게 되었다고 추정할 수 있습니다. 한달 후인 2023년 10월에 아킬리는 공동창업자이자, 창사 이래 CEO를 맡아 왔던 Eddie Martucci가 이사회 의장으로 물러나고, COO였던 Matt Franklin가 구원투수로 CEO 직에 취임하게 됩니다.
하지만, OTC 모델로 피봇팅한 이후에도 아킬리는 큰 반전을 이뤄내지는 못했습니다. (사실 그럴만한 충분한 시간도 아니었지요.) 2023년 아킬리의 매출은 $1.7M 이었는데요. 이 중에 $1.2M는 EndeavorOTC로부터, 나머지 $523,000은 EndeavorRx로부터 나온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아킬리는 총 $59.5M의 순손실을 기록하였습니다.
그리고 지난 2024년 4월에 아킬리는 일본의 제약사 시오노기와 수정된 협약을 발표하면서, 의미 심장한 이야기를 하게 됩니다. 바로 주주가치를 극대화할 수 있는 ‘전략적 대안(strategic alternatives)’을 적극적으로 모색하겠다는 것이었는데요. 이는 기업을 매각할 수 있는 매수자를 찾고 있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는 발언이었습니다. 결국 그 결과는 회사를 매각하는 것으로 나타나고 말았습니다.
Virtual Therapeutics ..라고?
이번 소식이 처음 알려지자, 업계의 많은 사람들과 여러 기사에서도 공통적으로 나온 반응은 ‘Virtual Therapeutics’가 무슨 회사이냐? 하는 것이었습니다. 지금까지 업계에 이름이 거의 알려지지 않은 무명의 회사였기 때문입니다.
Virtual Therapeutics는 이름에 나오는 것처럼 VR/AR과 같은 몰입형 기술(immersive technology)를 활용해서 정신 건강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기업입니다. 홈페이지에는 mental health와 mental fitness 정도로 표현되어 있고, 주요 서비스 라인업으로는 Breakthrough (스트레스 완화), Bloom (명상) 등이 소개되어 있습니다. 미국에서 고용주(employer) 시장을 주로 공략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다만, 제품이 아직 출시된 것은 아닌 것 같고, 홈페이지에도 설명이 그리 자세하지는 않습니다. 전반적으로 의료기기가 아닌 웰니스 영역에서의 정신 건강 문제 해결에 집중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대표자의 이력을 보면, 의료와는 거리가 있는 분입니다. 이 회사는 Dan Elenbaas라는 소프트웨어 및 게임 업계에서 성공적으로 엑싯한 창업자가 경영하는 회사입니다. 링크드인을 보면 Amaze Entertainment 라는 게임 회사를 1996년에 창업해서, 2006년에 거대 PE인 Francisco Partners에 매각했습니다. 본인 커리어 설명에는 “90개 이상의 게임 타이틀을 개발하여 3천만 개 이상의 유닛을 판매하고 10억 달러 이상의 소매 매출을 기록했다”고 되어 있는 것을 보면, 게임 업계에서는 상당한 성공을 거두었던 인물로 보입니다. 일단 Akili가 게임이라는 형식에 기반한 DTx를 개발했기 때문에, 이런 면에서는 fit이 맞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Akili는 Virtual Therapeutics에 흡수합병되지 않고, 자회사로 일단은 별도 법인으로 유지될 것으로 보입니다. Akili는 (피봇팅은 했지만) FDA 인허가 받은 제품을 판매하고 있는 조직인데, VT는 의료기기와 관련한 전문성 혹은 포지셔닝을 가지고 있는 조직은 아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유나이티드헬스 그룹과의 협업 가능성?
흥미로운 것은 Virtual Therapeutics와 미국 최대의 보험사이자 헬스케어 그룹인 UnitedHealth Group(UHG)과의 연관성에 대한 것입니다. 보고에 따르면 UHG는 2017년에 Virtual Therapeutics의 모회사인 디지털 헬스케어 인튜베이터 Savvysherpa를 인수하면서, 결과적으로 Virtual Therapeutics 역시 인수한 구조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2023년 4분기까지 UHG 계열사들은 Virtual Therapeutics 지분의 84%를 소유하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되면, 이번 매각을 통해서 UHG <- Savvysherpa <- Virtual Therapeutics <- Akili 의 순서로, Akili가 UHG의 증손자(?) 회사가 되기 때문에, 혹시나 Akili가 UHG와의 협업을 통해서 활로를 모색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예측 혹은 기대를 해볼 수도 있습니다. 페어 테라퓨틱스도 그러하였지만, Akili도 결국 사업적으로 돌파구를 찾지 못했던 가장 큰 이유는 지불자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사실 UHG를 비롯한 대부분의 미국의 메이저 보험사들은 지금까지도 디지털 치료제에 대해서 보험을 적용하기에는 시기상조라는 입장인데요. 혹시나 증손자 회사로 계열사(?)로 합류한 서비스에 대해서는 조금 더 호의적으로 볼 수도 있겠지요.
그런데 이런 기대는, 매각 발표 이후에 STAT에서 보고한 또 다른 소식에 의해서 기대감이 줄어들고 말았습니다. 익명의 소식통에 따르면 UHG가 2023년 말에 Virtual Therapeutics의 지분을 회사에 다시 팔았다는 것이지요. 만약 이 기사가 정확하다면, Akili와 UHG 사이의 지분 관계가 없는 것이니, 지분 관계에 기반한 협업도 기대하기는 어렵게 되었습니다.
아킬리 이후, 디지털 치료제의 미래는
이번 Akili의 매각을 보는 제 심정은 좀 복잡합니다. 저는 한국에 이 개념을 제일 처음 소개한 사람 중의 한명인데요. 초창기 DTxDM 컨퍼런스 (현재는 DTx 로 이름도 바뀜)도 한국인들이 아무도 가지 않을 때 보스턴까지 혼자서 다녀오기도 했었고요. 저는 강의 때 이 분야에 대한 hype을 항상 경고해왔습니다. 한국에서 2019년 즈음 갑자기 디지털 치료제 돌풍이 불기 시작할 때도 이 개념이 너무 과대평가 되어 있고, 넘어야 할 산들이 많아서 결코 쉬운 시장이 아니라는 이야기를 (지금까지도) 계속 해오고 있습니다.
그리고 또 한편으로는 소프트웨어 기반의 치료용 의료기기라는 패러다임의 변화는 아주 근본적이고 장기적으로는 낙관하고 있다는 시각을 (지금까지도) 견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업계에서 가장 선구자로 여겨졌던 페어 테라퓨틱스에 이어서 아킬리까지 사업적으로 좋지 않은 결말을 맞게 되는 것을 보니 마음이 편할 수가 없네요.
이는 디지털 치료제라는 분야가 얼마나 어려운지를 다시금 깨닫게 해줍니다. 임상 검증 – 인허가 – 보험적용 – 의사 처방 – 환자 활용으로 이어지는 단계에서, 인허가까지는 득했다고 하더라도 보험 적용, 의사 처방 등 이후 단계를 해결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페어 테라퓨틱스에 이어서 아킬리가 다시 보여줬다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혹은 아킬리가 인허가를 받고 의사 처방을 받는 소위 PDT (Prescription Digital Therapeutics)가 되는 것을 고집하지 않고, 처음부터 OTC 모델로 시장에 진입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해봅니다. 실제로 아킬리는 FDA 인허가를 받는 과정에서 예정보다 훨씬 오랜 시간을 소모하였는데요. (이는 EndeavorRx의 임상 디자인과 관련이 있다는 말이 있습니다.) 뒤늦게 OTC 시장에 진출해서 나름 나쁘지 않은 성과를 보였던 것을 고려하면, 차라리 OTC 시장으로 먼저 진출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하지만 이러한 해석 역시 결과론적인 것일테지요. 디지털 치료제는 완전히 새로운 분야였고, 이 분야의 사업을 개척한다는 것 역시 페어나 아킬리가 누구도 가보지 않은 길을 갔으니까요. 이 분야가 처음에는 효과성 검증을 위해 RCT를 해야 하는지와 같은 것들이 (지금은 너무나 당연한 것들까지도) 논쟁거리가 되었을 정도이니, 사업화를 어떻게 해야할지, 보험사를 어떻게 설득해야 할지, 설득이 가능하기는 한지, 사업 모델은 어떻게 구축해야 하는지는 모두가 한번도 해보지 않은 것이었습니다.
이번 아킬리의 매각을 보면서 여러 복잡한 생각이 드는 이유입니다. 표면적으로 아킬리가 매각된 $34M은 현재 환율로 따지면 한화 500억원도 되지 않는 금액입니다. 국내에서도 왠만한 디지털 치료제 스타트업의 밸류에이션이 시리즈 C 정도에 1,000억원 전후, 혹은 그 이상도 하는 것을 고려해보면, 이 매각가는 충격적으로 낮다고 할 수 있습니다. 특히 한국에서는 상장 심사를 할 때 해외의 사례를 벤치마크로 많이 참고하는데, 이런 마일스톤은 업계에 밸류에이션 산정에 두고두고 큰 장애물로 남게 될 것 같습니다.
또 한편으로는 이러한 실패 사례가 축적되면서 국내외 후발주자들의 사업 전략도 더 발전하지 않을까 합니다. 페어와 아킬리의 사례를 잘 분석해서 결국에는 실패로 귀결된 전략 이외에, 어떤 사업 모델, 시장 진입전략, 가치 제안을 해야할지를 잘 고민해보면 또 다른 돌파구가 나올 수도 있지 않을까요.
‘혁신가의 등에는 화살이 무수히 꽂혀 있다’ 는 말이 있습니다. 가장 앞서서 새로운 길을 개척하다보면, 시행착오도 가장 먼저 겪기 마련이기 때문입니다. 페어와 아킬리는 그렇게 누구도 가보지 않은 길을 가장 앞장서서 개척하다가 결국 가장 먼저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파산한 페어와 달리 아킬리는 피인수 이후 앞으로도 사업은 존속할테니 현재 실패라고 단정짓기는 어렵습니다만.. 기존에 아킬리가 가지고 있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지 실마리가 이번 인수를 통해서 보인 것은 전혀 아니지요.)
디지털 헬스케어는 여러 혁신적인 (혹은 fancy한) 기술과 컨셉으로 많은 주목을 받아왔습니다만, 이제는 더 이상 미래에 대한 꿈과 희망, 비전만을 팔 수는 없습니다. 이제는 이 분야에서 정말로 ‘돈을 벌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줘야 하는 때가 왔습니다. 디지털 치료제가 그러한 대표적인 섹터입니다. 페어와 아킬리의 실패를 밑거름 삼아, 또 다른 디지털 치료제 분야의 기업들이 좋은 성과를 보여주기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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