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turday 26th October 2024,
최윤섭의 디지털 헬스케어

국내 1호 디지털 치료제 허가에 부쳐

드디어 한국에서도 식약처가 승인한 첫번째 디지털 치료제(디지털 치료기기, digital therapeutics)가 나왔습니다. 바로 에임메드가 개발한 불면증 치료 목적의 애플리케이션 ‘솜즈’입니다. 불면증 환자를 치료하기 위한 인지행동치료(CBT) 기법에 기반한 소프트웨어 의료기기(SaMD) 입니다.

솜즈는 잘 증명되어 있는 불면증에 대한 인지행동 치료에 기반합니다. 수면습관 교육, 피드백, 행동 중재 등을 통해서 6~9주간 수면의 효율을 높여서 불면증을 개선합니다. 예를 들어, 수면 일기 작성, 수면 제한 요법 등을 통해서 불면증 증상 개선을 이끌어낸다고 합니다.

몇년 전부터 국내에서는 디지털 치료제에 대한 열풍이 불었는데요. 2020년 식약처에서 디지털 치료제를 정의하기 위한 가이드라인이 나온 이후, 국내에서는 10개 이상의 디지털 치료제가 식약처의 임상시험 계획 승인을 받고 임상시험을 진행 중이었습니다. 그 결과 지난 12월 에임메드의 ‘솜즈’와 웰트의 ‘필로우Rx’가 거의 비슷한 시기에 확증임상시험을 마치고 품목 허가를 신청했다는 소식이 있었습니다.

미국에서는 어림잡아 30개 이상, 독일에는 40개 이상의 디지털 치료제가 인허가를 받은 상황이기 때문에, 한국에서는 1호 허가 사례가 언제 나오고, 누가 될지 많은 관심을 모았는데요. 마침내 에임메드가 그 주인공이 되었습니다. (축하드립니다!)

사실 디지털 치료제 관련해서 한국은 후발주자였음에도 지난 몇년 동안의 눈부신 발전은 의료계, 산업계 뿐만 아니라, 식약처, 심평원 등 규제기관까지 합심하여 노력한 결과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저도 식약처, 심평원 자문위원 등으로 열심히 노력했지요ㅎㅎ)

이번 허가는 국내 디지털 치료제 분야에서 매우 중요한 마일스톤이 달성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제 정말 어려운 단계가 시작될 것이라고 볼 수도 있는데요. 허가의 문턱을 넘어섰기 때문에, 보험 수가, 의사 처방, 환자 사용 등의 또다른 문턱을 넘어, 이제는 사업화에 대한 숙제를 당면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정말 어렵고도 중요한 단계가 이제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번 허가와 관련해서 아시아경제 이춘희 기자님과 서면 좌담회를 진행하였는데요. 제가 드린 답변 중에 기사에 나가지 못한 내용도 많아서, 아래와 같이 제가 이번 1호 디지털 치료제 인허가에 대해서 생각하는 점들을 공유해드리려고 합니다.

 

Q. 그동안 DTx 산업과 관련해 다양한 제언을 해오신 입장에서의 소감이 어떠신지

감회가 새롭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한국에서 디지털 치료제라는 표현이 알려지기 전부터, 이 개념을 국내에 소개해왔었는데요. 해외에 비해서 국내에서는 꽤 오랜 기간 디지털 치료제에 대해서 아는 사람도 적고, 관심도 없었던 때가 있었다는 것을 떠올려보면, 최근 몇년 동안 국내에서 빠르게 진행되어온 디지털 치료제 관련 의학적, 산업적, 그리고 규제적 발전이 놀라울 따름입니다. 또한 다방면으로 디지털 치료제를 알리고, 여러 기업 및 규제기관과 협업한 입장에서 뿌듯하기도 합니다.

 

Q. 1호 DTx 승인이 이뤄지기는 했지만 실제 임상에 쓰이기까지는 아직 난항을 겪을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합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제도‧산업적으로 어떠한 방안이 필요하다고 보시는지 궁금합니다.

디지털 치료제가 임상에서 활발하게 사용되기 위해서는 인허가 이후에도 수가, 의사 처방, 환자 사용 등의 넘어야 할 과제들이 산넘어 산입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수가라고 생각합니다.

복지부에서 작년 디지털 치료제에 대한 수가 가이드라인 초안을 내어놓았는데요. 많은 고민이 들어간 방안이기는 합니다만, 산업계의 입장에서는 만족스러울 정도로 전향적인 안건은 아닙니다. 3~5년 정도의 예비등재 과정을 거쳐서 정식등재하여 수가를 책정하겠다는 것이 골자인데요. 예비등재에서는 제조 원가 수준의 보상만 한다는 점, 표준 치료 대비 임상적 효과를 입증한 경우에만 정식등재가 된다는 점은 산업계에서 보기에는 매우 보수적이라고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또한 수가를 받았다고 할지라도, 의사가 과연 처방을 할지, 또한 처방 받은 환자가 디지털 치료제를 얼마나 잘 활용할지 아직까지는 역시 매우 큰 숙제로 남아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제 미국, 독일 등에서는 수가를 받은 디지털 치료제가 여럿 있습니다만, 의사 처방 건수나, 환자 사용율을 보면 아직까지는 기대에 크게 못미치는 경우가 많습니다.

 

Q. 국내 의료시장은 ‘국민건강보험’이라는 단일한 공보험 지불자에 의해 운영되는 시장에 가깝습니다.  국내에서의 급여화 모델이 어떠한 방향으로 만들어져야 한다고 보시는지요?

저는 작년에 복지부에서 내어놓은 디지털 치료제 급여 방안에 상당한 고민과 고심이 담겨 있는 것으로 보았습니다. 디지털 치료제의 속성에 대해서도 잘 반영되어 있었는데, 특히 디지털 치료제의 경우 사용 주체가 환자로 변화하기 때문에 환자에게 직접 보상을 할 수도 있고, 사용일에 따른 차등 보상을 할 수도 있다는 등 꽤나 합리적이고 과감한 안들이 담겨져 있기도 했습니다. 다만, 결국 가장 중요한 것은 수가를 어떤 기준에 의해서 평가하고, 얼마를 줄 것인가 하는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보상의 주체나 방식도 중요하지만, 결국 제조사와 의사에게 직간접적으로 충분한 보상이 주어져야만, 디지털 치료제를 개발하고 처방하기 위한 동인이 될 것입니다.

이런 부분은 정책적인 우선순위가 반영이 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최근에 복지부 장관의 신년사를 포함한 여러 국가 정책 방향을 보면 디지털 헬스케어를 장려하겠다고 합니다. 디지털 헬스케어 분야를 한국이 글로벌을 선도할 수 있도록 하려면 결국에 보험 급여 차원에서의 혁신적인 개선을 빼놓고는 이야기가 어렵습니다. 수가의 개선은 디지털 헬스케어 혁신을 위한 충분조건이라고 볼 수는 없으나, 반드시 선행되어야 할 필요 조건 중의 하나라는 점은 분명합니다. 만약 정부가 정말 한국이 디지털 헬스케어 분야의 리더가 되기를 원한다면, 독일의 DiGA와 같은 파격적인 수가 정책도 고려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Q.  1호 DTx가 나오기는 했지만 아직 관련한 제도는 갖춰지지 않아 국내에서 어떠한 파급효과가 나올지 아직은 예상하기 어려운 면도 있습니다. DTx를 통해 환자에게나 사회적으로 어떠한 효과가 있을 것으로 보시는 지 궁금합니다.

이상적으로는 디지털 치료제는 더 저렴한 가격에, 더 많은 환자를 대상으로, 언제 어디에서나, 비대면으로, 안전하게 의학적 가치를 전달할 수 있는 수단입니다. 개발 비용이 덜 들기 때문에 원가가 낮으며, 소프트웨어이므로 복제 및 배포 비용이 0에 가깝습니다. 또한 스마트폰 등 디지털 기기를 활용하기 때문에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으며, 비대면이므로 효율적이고, 또한 침습적이지 않으므로 비교적 안전합니다.

하지만 현실에서 디지털 치료제가 사회적, 의학적으로 어떤 파급효과가 가질지는 너무 많은 변수가 얽혀 있기 때문에 섣불리 단정하기 어렵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인허가 이후에도 수가, 의사 처방, 환자 사용까지 이어져야 하는데 이 모든 과정이 결코 쉽지 않습니다. 일례로 환자 사용의 문제에 있어서도, 해외 사례를 보면 환자가 디지털 치료제를 처방받은 이후에 상당수가 끝까지 사용하지 않고 이탈합니다. 더 나아가, 디지털 기기의 사용에 익숙하지 않은 고령층의 경우 이런 문제가 더욱 심각할 수 있습니다.

만약 디지털 치료제가 당면하고 있는 여러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면, 환자에게나 사회적으로 미치는 영향이 생각보다 크지 않을 수 있습니다. 업계의 입장에서는 이런 문제들을 계속 해결해나가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Q. DTx 산업 발전을 위해 학계, 의료계 등 전반을 아우르는 산업계에서 어떠한 노력이 더 필요하고, 정부나 투자 업계에서는 어떠한 지원이 이뤄져야 한다고 보시는지 궁금합니다.

이 부분은 디지털 헬스케어 산업 전체에 해당되는 부분이기도 합니다만, 디지털 치료제도 이제는 실질적인 가치를 통해서 존재 의미를 증명해야 합니다. 쉽게 말해서 이제는 디지털 치료제를 제공함으로써 제조사는 돈을 벌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줄 필요가 있습니다. 지난 몇년 동안 한국에서는 갑자기 디지털 치료제에 대한 급격한 관심이 쏠리기 시작해서, 디지털 치료제를 개발하는 회사에 대한 막대한 투자금과 큰 관심이 쏠렸습니다.

사실 지금까지는 디지털 치료제라는 새롭고 멋있는 개념에 대한 꿈을 담보로 관련 회사들이 투자를 유치하고 개발을 진행해왔습니다. 이제는 그러한 꿈이 실제적인 가치로 구현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해 나가야 하는 때가 오고 있습니다. 허가는 그러한 가치를 증명하기 위한 첫번째 단계를 통과했다는 의미이지만, 앞으로도 여전히 많은 숙제가 남아 있습니다.

디지털 치료제가 미래 헬스케어 산업에서 중요한 개념이며 하나의 큰 축을 차지하게 될 가능성은 높다고 봅니다. 만약 이러한 분야를 한국이 진정으로 선도하기를 정부가 원하고 있다면, 전향적인 수가 정책을 포함한 정책적인 지원이 있어야 합니다. 저희 디지털 헬스케어 분야에서는 정부가 미래 먹거리로 지원하겠다는 선언은 그동안 많이 있었으나, 현장에서 피부로 느낄 수 있는 변화는 아직까지 많지 않았습니다. 의료기기 산업은 결국 규제 산업이고, 해당 국가의 의료 산업은 규제의 수준까지만 성장할 수 있습니다.

현장에서는 한국의 디지털 헬스케어 산업에 여러 변화와 기회가 오고 있음을 느끼고 있는데요. 특히 디지털 치료제 분야는 한국의 위상이 글로벌에서도 매우 높은 수준입니다. 이는 산업계에서 그동안 척박한 환경에서도 불철주야 노력했던 바가 크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좋은 기회를 놓치지 않을 수 있도록 정책적으로나 규제적으로 전향적인 지원이 필요합니다.

 

Q. 글로벌 DTx 산업은 Pear와 Akili라는 두 총아가 잇따라 FDA 승인을 받았고, 이어 상장까지 성공하면서 문을 열어젖혔다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하지만 최근 두 기업은 연달아 대규모 정리해고에 나서는가하면 주가면에서도 급락하는 등 당초 기대와 같은 실적, 처방 확대를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기도 합니다.

일단 최근의 페어 테라퓨틱스와 아킬리 인터렉티브의 정리해고는 글로벌 경기 침체와 무관하다고 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최근 구글, 아마존, 페이스북 같은 글로벌 IT 기업들도 정리해고에 나서고 있기 때문에, 페어와 아킬리의 정리해고만 따로 떼어놓고 유난히 큰 위기에 봉착했다고 이야기 하기는 어렵습니다.

하지만 처방 건수, 매출 등을 보면, 회사에서 제시하고 있는 가이던스는 지켜나가고 있으나, 절대적인 수치로 보면 아직은 기대했던 수준에는 크게 미치지 못하기는 합니다. 특히 페어 테라퓨틱스는 FDA 인허가 받은 디지털 치료제를 3개나 가지고 있고, 판데믹 상황의 일시적 규제 완화에 따라서 허가를 면제 받고 시장에 출시한 Pear-004까지 합치면 총 4개의 파이프라인이 시장에 나와 있는 상황입니다. 이러한 기업들이 FDA 허가 이후에도 사업적인 성과를 크게 내지 못하고 있다는 것은, 앞서 여러번 말씀드린 것처럼 이 산업에서 사업적 성과를 내는 것이 얼마나 산넘어 산인지를 보여주는 것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긍정적인 뉴스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페어 테라퓨틱스의 경우에는 최근에도 미국 플로리다 주에서 메디케이드 수가를 지불하기로 결정했다는 뉴스가 있었습니다. 또한 미네소타, 하와이, 메릴랜드, 아리조나 등에서도 메디케이드 수가를 지불할 것을 고려하고 있다고도 합니다. 아직 누구도 가보지 못한 길이기 때문에, 이 분야의 성패는 그 길을 누가 더 잘 개척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디지털 치료제는 새로운 개념이기 때문에 규제기관, 보험사, 의사, 환자 모두에게 아직은 낯설고 익숙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보험사나 규제기관을 설득하는 것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 일이고, 어쩌면 의사와 환자의 인식을 바꾸는 것은 더욱 어려운 일일 수 있습니다. 때문에 이 분야의 사업적인 지표가 단기간에 잘 나올 것으로는 보고 있지는 않습니다만, 장기적으로는 낙관하고 있습니다.

 

Q. 해외 제도와 관련해 가장 전향적인 제도로 언급되고 있는 제도가 바로 독일의 DiGA입니다. 1년여간 수가를 인정해줘 사실상 RWD 확보의 장으로 인정해주고 있습니다. 국내에서도 이 같은 전향적 제도에 대한 요구의 목소리가 상당한데 이 같은 제도가 도입 시 국내에서도 비슷한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고 보시는 지 궁금합니다.

독일의 DiGA는 디지털 헬스케어 앱에 대해서 규제기관의 인허가와 동시에 수가를 자동적으로 1년 동안 부여하는 파격적인 제도입니다. 이렇게 1년 동안 시장에서 사용하면서 얻은 RWD로 해당 디지털 치료제를 평가하여 수가를 확정하는 구조입니다. DiGA를 통해서 현재 30개 이상의 디지털 치료제가 인허가 및 수가까지 받으면서 환자에게 처방되고 있습니다. 사실 DiGA는 현재 진행형이기 때문에 아직까지 성과나 효과에 대한 결론을 내리기에는 시기상조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이러한 제도가 우리에게 주는 시사점은 명확합니다. 바로 정부가 정책적으로 디지털 헬스케어를 육성하기로 결정했다면, 파격적인 수가 정책이 반드시 동반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특히 새로운 분야의 글로벌 주도권을 잡기 위해서는 정책적 우선순위에 따라서, 일정부분 불확실성과 리스크, 그리고 재정적인 낭비를 감수하고서라도 과감한 결정을 내릴 필요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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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out The Author

디지털 헬스케어를 통해 의료를 혁신하고 세상을 더 건강하게 만들고자 하는 벤처투자자, 미래의료학자, 에반젤리스트입니다. 포항공대에서 컴퓨터공학과 생명과학을 복수 전공하였고, 동대학원에서 전산생물학으로 이학박사를 취득했습니다. 스탠퍼드 대학, 서울대학교병원 등에서 연구하였습니다. 현재 디지털 헬스케어 스타트업 전문 투자사, 디지털 헬스케어 파트너스 (DHP)를 2016년에 공동창업하였고, 대표를 맡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40여 개의 디지털 헬스케어 스타트업에 투자하였습니다. 네이처의 디지털 헬스케어 분야 자매지 『npj 디지털 메디슨』의 편집위원이자, 식약처, 심평원의 전문가 협의체 자문위원입니다. 『디지털 헬스케어: 의료의 미래』 『의료 인공지능』 『헬스케어 이노베이션』 등을 집필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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