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iday 29th November 2024,
최윤섭의 디지털 헬스케어

[칼럼] 디지털 의료 혁신과 규제 과학

최근 서울신문에 기고한 칼럼입니다. 글자수 제한 없이 집필했던 원문을 올려드립니다. 

기술 혁신이 가속화될수록 규제의 중요성이 커진다. 특히 인간의 생명을 다루는 의료 및 헬스케어 분야의 기술에 대한 규제는 더욱 그러하다. 하지만 디지털 기술 혁신이 예측 불가능한 방향으로 폭발적으로 일어나면서, 이를 어떻게 합리적으로 규제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규제 과학의 중요성이 대두된다. 규제 과학은 규제 시스템 자체를 과학적으로 수립하는 방법론이다. 식약처 등 규제 기관은 이렇게 규제에 대한 과학적인 접근을 더욱 강화해야 한다. 또한 이를 위해 규제기관에 대한 지원도 필요하다.

규제는 근본적으로 기술의 발전에 후행할 수밖에 없다. 4차 산업혁명으로 대표되는 디지털 혁신이 폭발적으로 일어남에 따라 디지털 의료와 관련된 규제의 간극은 더욱 커지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기술과 규제 간의 필연적 간극을 최소화함으로써, 기술의 혁신은 장려하고, 기술의 안전성을 담보하여, 환자들에게 혁신의 수혜를 적시에 전달할 수 있는 규제가 필요하다.

이제는 규제도 혁신되어야 한다. 규제를 무조건적으로 완화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특히 인간의 건강을 다루는 의료 분야에서 필요한 규제는 꼭 해야만 한다. 하지만 반대로 불합리하거나 불필요한 규제는 줄여가야 한다. 즉, 규제는 합리적이어야 한다. 하지만 이것이 말처럼 쉽지는 않다. 디지털 의료에 있어, 합리적인 방식과 합리적인 수준의 규제를 어떻게 정의할 수 있는가?

더구나 최근 디지털 의료 기술의 발전은 눈이 팽팽 돌아갈 지경이다. 이미 인공지능 관련 의료기기는 FDA는 350개 이상, 식약처는 100여 개를 인허가했다. 심지어 게임으로 ADHD를 치료하고,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으로 중독, 불면증, 우울증을 치료하며, 가상현실(VR)을 통해서 통증을 경감시키는 기술도 FDA 허가를 받았다. 최근에는 임상시험을 원격으로 진행하기도 하며, 여기에 블록체인 기술이 들어가기도 한다. 심지어 이러한 기술들은 인허가 이후에도, 현장에서 사용되며 끝없이 데이터를 만들어내고, 이를 기반으로 계속 진화한다. 이를 어떻게 합리적으로 규제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이 깊어질 수밖에 없다.

결국 혁신을 규제하기 위해서는, 규제도 혁신해야 한다. 여기에 필요한 것이 바로 규제 과학이다. 규제를 합리적이고 효과적, 효율적으로 하기 위해, 규제 그 자체를 과학적으로 수립해야 한다는 것이다. 신약 후보 물질의 효능과 안전성을 증명하기 위하여 우리는 실험군과 대조군을 놓고 임상 연구를 진행하여 데이터를 분석한다. 규제도 이러한 과학적 접근법을 활용할 수 있다. 새로운 규제 방식을 도입할 때, 이렇게 ‘임상시험’을 통해 일정 기간 동안 기존의 규제 방식과 대비하여 효과적이며 효율적인지를 검증하는 것이다.

실제로 FDA는 지난 몇 년 동안 소프트웨어 의료기기에 대한 새로운 규제 방식인 Pre-Cert를 도입하기 위하여, 규제 방안 자체를 일종의 ‘임상 시험’을 통해 검증하고 있다. 기존의 심사 방식(대조군)은 그대로 진행하되, 개발사가 원하는 경우 Pre-Cert를 통한 허가심사(실험군)를 동시에 병행하는 것이다. 제조사의 입장에서는 기존과 동일한 방식으로 인허가를 받으니 추가적 부담이 없으면서도, 동시에 FDA의 입장에서는 새로운 규제를 시험해볼 수 있다. 이렇게 새로운 규제에 대한 과학적인 검증을 통해 혁신 기술에 대한 합리적인 규제 방안을 구현할 수 있다.

또 여기에는 간과해서는 안될 또 하나의 중요한 이슈가 있다. 바로 리소스다. 규제 과학을 실행하려면 적지 않은 리소스가 추가적으로 들어간다. 기존에 하지 않던 방식으로 규제를 시험하는 것이므로 추가적인 시간과 인력, 그리고 재원이 소요될 수밖에 없다. 이러한 맥락에서 식약처에 최근 디지털 의료 기술을 전담하는 디지털헬스규제지원과가 신설된 것은 고무적인 일이다. 이러한 전담 부서는 규제 혁신을 위하여 규제 과학을 전향적으로 도입해야 하며, 또 관계 부처에서도 인력과 재원 등의 리소스를 적극적으로 지원해야 한다. 디지털 헬스케어와 관련하여 규제 이슈들이 난적 해 있음을 감안한다면, 전담 부서의 신설은 앞으로 가야 할 머나먼 길의 첫걸음일 따름이다.

디지털 의료 기술의 혁신은 갈수록 더욱 빨라질 것이다. 앞으로 아무런 전례가 없으며, 듣지도 보지도 못했던 새로운 의료 기술이 더욱 빠른 속도로 개발될 것이다. 이러한 기술의 혁신을 합리적으로 규제하기 위해서는, 결국 규제도 혁신되어야 한다. 규제의 혁신을 위해서 식약처는 규제 과학을 적극적으로 도입해야 하며, 또한 관계 부처는 이를 전폭적으로 지원하는 것이 필요하다.

의료 규제의 혁신은 의료 산업의 발전과도 직결된다. 의료 산업의 수준은 규제의 수준에 수렴하기 때문이다. 의료 기술 혁신을 위한 규제 역시 혁신됨으로써, 4차산업혁명의 핵심인 의료 산업의 발전도 더욱 촉진되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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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out The Author

디지털 헬스케어를 통해 의료를 혁신하고 세상을 더 건강하게 만들고자 하는 벤처투자자, 미래의료학자, 에반젤리스트입니다. 포항공대에서 컴퓨터공학과 생명과학을 복수 전공하였고, 동대학원에서 전산생물학으로 이학박사를 취득했습니다. 스탠퍼드 대학, 서울대학교병원 등에서 연구하였습니다. 현재 디지털 헬스케어 스타트업 전문 투자사, 디지털 헬스케어 파트너스 (DHP)를 2016년에 공동창업하였고, 대표를 맡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40여 개의 디지털 헬스케어 스타트업에 투자하였습니다. 네이처의 디지털 헬스케어 분야 자매지 『npj 디지털 메디슨』의 편집위원이자, 식약처, 심평원의 전문가 협의체 자문위원입니다. 『디지털 헬스케어: 의료의 미래』 『의료 인공지능』 『헬스케어 이노베이션』 등을 집필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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