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iday 29th November 2024,
최윤섭의 디지털 헬스케어

2022년 주목할 디지털 헬스케어 이슈 (2) 의료 인공지능과 디지털 치료제 수가

이슈 (2) 인공지능과 디지털 치료제 관련 수가

수가 이야기가 나온 김에 이어서 바로 해보겠습니다. 디지털 헬스케어 산업 이야기를 하면서 수가를 빼놓을 수는 없겠지요. 업계의 관용 표현대로 ‘기승전수가’ 이기 때문입니다. 의료 및 헬스케어와 관련한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여 사업화할 경우, 한국과 같은 단일 의료 보험의 국가에서는 별도 급여가 책정되지 않으면 수익화를 할 수 있는 방법이 극히 제한됩니다. 하지만 역시 이러한 단일 의료 보험 국가에서는 ‘국민의 혈세’를 쓰기 때문에, 급여 기준을 매우 보수적으로 잡을 수밖에 없습니다.

현재 업계에서 가장 크게 관심을 가지는 수가는 역시 인공지능과 디지털 치료제에 대한 것입니다. 인공지능의 경우에는 영상의학과 및 병리과 인공지능에 대해서 심평원의 요양급여 여부 평가 가이드라인을 각각 2019년 12월, 2020년 12월에 내어놓은 바 있습니다. (고백하자면, 영상의학과 급여 가이드라인 제정 과정에는 저도 전문가협의체에 참여했습니다.)

 

기승전 수가: 고사하는 인공지능 산업

문제는 이 가이드라인이 너무 보수적으로 나왔기 때문에, 아직까지 국내에서 급여를 받는 인공지능은 단 하나도 없다는 것입니다. 뷰노가 2018년 5월에 골연령 판독 보조 인공지능을 한국에서 최초로 인허가 받은 이후로 약 4년 남짓한 기간 동안 수십 개 (식약처의 공식 발표는 없었지만, 추세를 보면 이제는 100개가 넘는다고 추정해볼 수도 있습니다)의 인공지능이 의료기기 허가를 받았지만, 그 중에 하나도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그 결과 의료 인공지능 회사들의 사업 실적은 현재 기대에 못미치고 있습니다. 세계적인 기술력을 가진 의료 인공지능 회사들이 코스닥 시장에 상장한 이후로, 매출 등의 사업 실적이 저조한 상황이지요. 그 원인으로 여러가지를 들 수 있겠습니다만, 핵심 이유 중의 하나가 수가라는 것을 부인할 수는 없습니다. 별도 급여가 책정되어 있지 않은 상황에서 병원에서는 이런 인공지능을 도입할 재정적인 동인이 현저히 떨어지기 때문입니다. 이 때문에 많은 회사들이 사업 모델을 변경하거나, 해외 시장으로 눈을 돌리고 있습니다.

현재의 급여 가이드라인은 ‘기존’ 의료기기의 원칙에 매우 부합하며 ‘합리적’ 입니다. ‘시장 출시 전’에 이것이 ‘완전히 새로운’ 기술이며, 비용효과성이 있다는 것을 검증해야만 급여를 주겠다는 것이지요. (논리적으로 완결했기 때문에, 협의체에 참여한 저를 비롯한 혁신주의자들도 반론이나 대안을 제기하기가 어려웠습니다.) 의료 인공지능 산업에 특혜를 제공하라고 주장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아래에서 설명할 소프트웨어 의료기기(SaMD)의 특성을 반영하는 수가 정책이 필요하다는 것과 동시에, (제가 국회, 신문 칼럼, 유튜브 등 여러 경로를 통해 주장했듯이) 인공지능 산업에 대한 정책적 우선순위를 고려해야 한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지난 대선에서도, 이번 대선에도 ‘4차 산업 혁명’을 국가는 외치고 있으나, 정작 글로벌에서 인정 받는 ‘4차 산업 혁명’의 대표적인 국내 기술은 현장에서 고사하고 있으니까요.

디지털 치료제의 수가, 이번엔 다를까?

더 나아가, 이제는 디지털 치료제에 대해서는 수가가 어떻게 책정될지가 이슈입니다. 심평원과 NECA에서 디지털 치료제의 수가에 대한 고민을 시작한지는 시간이 흘렀습니다. (저도 몇번 미팅에 들어가고, 강의도 해드린 적 있습니다.) 하지만 아직 공식적으로는 구체적인 결론이 나왔거나, 움직임이 보이지는 않습니다. 디지털 치료제를 치료재료, 행위 등 무엇으로 볼 것인지, 가치평가를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얼마나 고민이 되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작년 하반기에 복지부 행사에서 디지털 치료제의 급여에 대해서 담당자가 발표를 한 것을 본 적이 있는데 (당시 유튜브로 생중계되었는데, 영상이 지금은 남아 있지는 않네요), 기존의 통상적인 의료기기에 대한 일반적인 수준 이상의 고민은 아쉽지만 보이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이 발표를 보면서 디지털 치료제 업계 분들과 단톡방에서 실시간으로 탄식을 내뱉었던 것이 기억납니다.

관계 부처에서는 혁신수가가 논의되고 있습니다만, 과연 산업계의 요구에 맞는, 혹은 4차 산업 혁명에 대한 디지털 헬스케어 산업의 중요도에 부합하는 정도의 수가 정책이 나올 것인지는 지켜봐야 하겠습니다. 업계에서는 미국의 MCIT나 독일의 DiGA 정도가 되는 전향적인 수가 정책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관련해서 제가 유튜브 라이브에서 했던 이야기가 기사화되기도 했습니다만, MCIT나 DiGA 와 같은 정책을 그대로 따라할 필요는 없습니다. 다만, 왜 이렇게 파격적일 정도로 전향적인 수가 정책이 디지털 헬스케어 산업에 대해서 나오고 있는지 그 근본적인 원인을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현재 한국의 수가 정책이 그에 비하면 얼마나 지나치게 보수적인지도요.

SaMD에 특화된 수가 정책

저는 반복해서 SaMD(Software as a Medical Device), 즉 소프트웨어 의료기기에 특화된 새로운 수가 정책의 필요성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현재의 한국 수가 정책은 하드웨어 기반의 의료기기를 가정하고 있기 때문에, adaptive 한 특성을 가지며, RWD를 활용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 의료기기에 대해서는 적합하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서, 디지털 치료제의 경우에는 이러한 RWD를 활용한 새로운 가치평가 방법도 존재합니다. 바로 value-based payment 입니다.

최근에 미국의 국영 의료 보험인 메디케어드는 2021년 10월부터는 메사츄세츠 주에서, 2022년 1월부터는 오클라호마 주에서 Pear Therapeutics의 디지털 치료제인 reSET, reSET-O 에 대해서 급여를 적용한다고 발표했습니다. 그리고 (메사츄세츠 주는 좀 명확하지 않지만) 오클라호마 주에서는 보험료 지급을 value-based 로 하기로 계약했습니다. 즉, 디지털 치료제의 경우는 소프트웨어이기 때문에 처방된 이후 환자가 이것을 실제로 사용했는지의 여부를 파악할 수 있습니다. 때문에 이것을 사용한 경우에만 보험금을 지급하도록 하는 형태로 계약을 한 것이지요.

저는 한국에서도 디지털 치료제를 비롯한 SaMD에 대해서는 이러한 value-based payment 에 대해서 적극적으로 고민해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의료 재정 낭비가 우려된다면, 이렇게 효과가 있는 경우에만 급여를 지급함으로써 재정 낭비 가능성을 줄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완전히 새로운 제도라서 부담스러울 수도 있겠습니다만, 앞으로 이러한 새로운 지불 방식에 대한 필요성이 증가하는 것은 불가피한 일입니다.

왜냐하면 앞으로 기존에는 없던 완전히 새로운 형태의 의료기기가 계속해서 등장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새로운 유형의 의료기기는 하드웨어보다는 소프트웨어를 활용한 (더 정확히는, 소프트웨어로만 구성된) 의료기기일 경우가 많을 것입니다. 이는, 의료기기의 사용 여부와 사용 행태, 심지어 사용 결과를 실세계 데이터 (Real-World Data)로 파악할 수 있다는 의미가 됩니다. 더 나아가 이런 데이터를 활용하여 의료기기의 정확성, 안전성 및 비용 효과성이 더욱 개선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해당 의료기기에 대한 가치평가 방법도 그에 맞게 바뀌어야 합니다.

혁신 기술에 맞는 수가 프레임워크의 근본적 전환

이러한 소프트웨어 의료기기의 등장에 발맞춰 한국의 수가 제도는 그 프레임워크부터 근본적인 고민을 해야 합니다. 제가 심평원 자문회의에 들어가면 매번 드리는 말이, ‘껀 by 껀으로 하지 마시고, 근본적인 변화에 대한 프레임워크부터 다시 짜셔야 합니다’ 입니다. 혁신은 예측할 수가 없기 때문에, 결국 정부가 가치평가에 대한 모든 경우의 수를 미리 계산해놓고, 촘촘하게 그물을 짜놓 것이 불가능합니다. 미리 그물을 촘촘하게 짜놓으면, 앞으로 완전히 새로운 의료기기들이 나오면서 기준에 들어맞지 않는 계속 예외적인 상황이 생길 것이며, 그럴 때마다 또 ‘껀 by 껀’으로 고민을 해야 합니다.

대신, 어느 정도는 비효율을 감수하고서라도, 가치평가를 어느 정도 기업의 자율성에 맡기고, 정부는 큰 범위에서의 관리 감독을 더 철저하게 하는 쪽으로 가야만 혁신의 수혜를 환자들이 적시에 받을 수 있고, 지금처럼 산업도 고사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결국 이것이 MCIT와 DiGA와 같은 제도의 기저에 깔린 문제의식입니다. 혁신 기술의 가치평가에 대해서 미리 기준을 다 세워둘 수 없으니, (적어도 일부 혁신 기술에 대해서는) 인허가와 수가를 통합해버리는 것이지요. 혁신 기술은 인허가와 함께 일정 기간 동안 수가를 무조건 부여해서, 이 기간 동안 시장에 선진입하여 사용하게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일정 기간 동안 (MCIT는 4년, DiGA는 최장 2년) 현장에서 사용하면서 얻은 RWD를 기반으로, 그 효용을 재산정하겠다는 것입니다.

제가 항상 강조하는 것이지만, 혁신 기술에 대해서는 정부가 무엇을 ‘더’ 할지 고민하지 말고, 무엇을 ‘덜’ 할지 고민해야 합니다. 이번 대선에서 누가 대통령이 되든, 제발 이 부분을 명심해주시면 좋겠습니다.

(혹자는 미국에서 폐기된 MCIT를 왜 계속 이야기 하느냐고 말씀하실 수도 있을 것 같아, 노파심에서 몇마디 더 덧붙여 보겠습니다. MCIT 가 백지화된 근본적인 이유 중의 하나는 이 지불 제도가 반드시 ‘메디케어 가입자’에게 도움이 되라는 법이 없다는 것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메디케어는 고령층만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디지털 기술의 수혜 대상으로는 적절하지 않은 측면이 있습니다. 반면 한국에서는 건보가 전국민을 대상으로 하니, 오히려 이런 문제를 다른 방법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더구나 MCIT에 깔린 근본적인 문제 의식은 어떤 방식으로든 다시 제도화가 시도될 것으로 보입니다. 실제로 Cure 2.0의 draft package에 MCIT 가 포함되기도 했고요. 기술이 발전하는 방향은 이미 거스를 수 없기 때문에, 기술과 수가 제도에서 나오는 괴리는 결국 새로운 제도로 이어질 것으로 봅니다. 그것이 정확히 MCIT와 같은 방식은 아닐지라도요.)

(3편 ‘원격의료 합법화 이슈’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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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out The Author

디지털 헬스케어를 통해 의료를 혁신하고 세상을 더 건강하게 만들고자 하는 벤처투자자, 미래의료학자, 에반젤리스트입니다. 포항공대에서 컴퓨터공학과 생명과학을 복수 전공하였고, 동대학원에서 전산생물학으로 이학박사를 취득했습니다. 스탠퍼드 대학, 서울대학교병원 등에서 연구하였습니다. 현재 디지털 헬스케어 스타트업 전문 투자사, 디지털 헬스케어 파트너스 (DHP)를 2016년에 공동창업하였고, 대표를 맡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40여 개의 디지털 헬스케어 스타트업에 투자하였습니다. 네이처의 디지털 헬스케어 분야 자매지 『npj 디지털 메디슨』의 편집위원이자, 식약처, 심평원의 전문가 협의체 자문위원입니다. 『디지털 헬스케어: 의료의 미래』 『의료 인공지능』 『헬스케어 이노베이션』 등을 집필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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