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한국경제신문에 기고한 칼럼의 원문입니다.
디지털 헬스케어 혁신은 결국 스타트업에서 나온다. 아마도 필자는 한국에서 디지털 헬스케어 스타트업을 가장 많이 접하는 사람 중의 한 명일 것이다. 필자는 5년 전 디지털 헬스케어 전문 투자사를 설립하면서 의료 전문가에서 벤처투자가로 변신했다. 이후 20개가 넘는 스타트업에 투자하는 등 생사고락을 함께하고 있다. 그중 어떤 회사는 최근 IPO에 성공하는 등의 성과를 보이기도 했지만, 또 어떤 회사는 안타깝게도 폐업한 곳도 있다.
성공한 스타트업과 그렇지 못한 스타트업의 차이는 어디에서 오는가. 가장 중요한 점은 쓸모 있는 것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필자가 받아보는 많은 사업계획서가 충분히 크지 않은 니즈를 대상으로 한다. “있으면 좋지만, 없어도 상관없는” 사업을 하는 것이다. 특히, 신기술 기반의 스타트업들이 이런 함정에 잘 빠진다. 기술이 아무리 좋아도, 의료 현장에서 필요가 없거나, 고객들의 지불의사가 충분히 크지 않거나, 수익 모델이 성립하지 않으면 사업이 성공하기 어렵다.
규제, 혹은 한국의 특수한 의료 시스템도 이해해야 한다. 헬스케어는 기본적으로 규제 산업이다. 외국에서 아무리 성공적인 기업이라도 한국에서는 사업성이 없거나, 사업 자체가 불가능할 수 있다. 더 나아가, 단일의료보험 체계, 당연지정제, 보장성 확대, 저수가 등 한국 특유의 의료 시스템에 대한 이해도 필요하다. 한국의 규제 환경과 의료 시스템이 헬스케어 스타트업에 그리 호의적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어려운 상황에도 불구하고 돌파구를 만들어내는 것이 결국 혁신이다. 특히, 자신이 진행하는 사업이 어떤 규제의 영향을 얼마나 받는지는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어야 한다. 필자가 만나본 기업 중에는 사업과 관련된 규제, 혹은 수가 기준을 정확히 파악하지 못한 경우도 적지 않았다.
또한 스타트업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결국 대표자다. 초기 스타트업일수록 대표의 비중이 더욱 크다. 스타트업에서 대표는 회사의 기획, 전략, 재무, 마케팅, 기술 등 대부분을 책임지는 1인 다역을 하면서, 회사와 자신을 계속 더 발전시켜야 한다. 결국 회사는 대표의 그릇만큼 성장한다. 특히, 이 분야의 스타트업 생태계가 더 발전하기 위해서는 더 역량 있는 창업가들이 이 분야로 진입해야 한다. 최근 의료인 출신의 창업자가 늘어나는 것도 긍정적인 일이다. 하지만 이것만으로 충분하지는 않다. 의료 전문성은 기업을 잘 이끌 수 있는 필요조건일 뿐, 성공적인 사업을 만들기 위한 충분조건은 아니다. 결국 전문가의 틀에서 벗어나, 성공적인 경영자로 성장해야만 사업도 성장할 수 있다.
투자자들의 전문성도 높아져야 한다. 헬스케어 스타트업에 투자하는 국내 투자자들을 만나보면, 헬스케어에 대한 전문성이 아직 부족하거나, 시장을 피상적으로만 이해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혁신적인 스타트업에 더 힘을 실어주고, 생태계가 더 커지기 위해서는 투자자의 전문성이 더 높아져야 한다. 스타트업의 입장에서도 해당 투자자가 단순히 자금만 투입하는 수준인지, 혹은 시장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문제를 같이 고민할 수 있는 투자자인지를 잘 가려봐야 한다. 창업자와 투자자의 수준이 모두 높아져야, 스타트업 생태계도 더 성장할 수 있다.
지난 몇 년 동안 한국의 디지털 헬스케어 스타트업 생태계는 질적, 양적으로 크게 성장했다. 하지만 아직 충분하지 않다. 최근 다른 분야에서는 국내 스타트업의 세계적인 성과가 자주 들려온다. 국내 디지털 헬스케어 분야에서도 머지않아 유니콘 기업이 등장하고, 글로벌 스타트업이 나타나길 꿈꿔본다. 필자도 계속 최선을 다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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