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달 한국경제신문에 기고한 칼럼입니다. 분량 제한으로 지면에 나가지 못한 원문을 올려드립니다.
코로나19가 디지털 헬스케어 분야에는 큰 전기를 마련해주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여러 산업이 큰 타격을 입는 상황이다. 하지만 오히려 디지털 헬스케어는 판데믹 상황에서 역할이 더 커지면서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는 상황이다. 코로나로 인한 직간접적인 건강 문제가 더욱 커지고 있음에도 기존의 의료 시스템이나 건강 관리 서비스 등의 선택지가 줄어들면서, 자연스럽게 디지털 헬스케어가 대안으로 주목받고 있는 것이다.
디지털 헬스케어 전문 조사 기관인 락헬스(Rock Health)가 최근 내어놓은 2020년 상반기 투자 동향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에서는 디지털 헬스케어 분야에 사상 최대의 투자금이 몰리고 있다. 3월 경부터 코로나19 사태가 심각해지면서 경기 침체에 대한 우려가 높아지며, 시장에 대한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투자는 위축될 것이라고 예상되었다. 하지만 결과는 완전히 반대로 6조원에 이르는 투자가 상반기에만 이뤄지며, 역사상 최대 규모를 기록한 것이다.
주목 받은 분야로는 원격의료 분야를 빼놓을 수 없다. 대면진료가 어려워지면서 원격진료 및 원격 환자 모니터링 회사가 많은 주목을 받았다. 여기에는 코로나로 인한 보건복지부(HHS), 보건의료재정청(CMS) 등의 규제 완화가 원격의료 산업의 재평가에 큰 역할을 했다. 특히 CMS가 원격진료에 대한 수가를 대면진료와 동등하게 부여하는 결정이 매우 중요하였다. 코로나19 사태가 마무리된 이후에도 이러한 수가 정책을 유지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지만, CMS의 수장 시마 버마(Seema Verma)는 과거로 완전히 돌아가기는 어려울 것(“I can’t imagine going back”)이라고 공언하고 있다.
디지털 치료제로 대표되는 소프트웨어 기반의 건강 관리 솔루션도 큰 주목을 받고 있다. 특히 코로나 때문에 미국에서는 국민들의 정신 건강이 크게 악화되고 있다. 코로나 때문에 우울증이나 불안을 보이는 인구는 1억 명에 육박한다. 또한 최근 미국의학회지(JAMA)에 발표된 연구에 따르면 성인 중에 13.6%가 심각한 정신적 스트레스를 보이고 있는데, 이 수치가 2018년에는 3.9%에 불과했던 것에 비하면 큰 폭의 상승이다. 미국 직장인들이 느끼는 스트레스는 911 테러나 2008년 금융위기 당시를 넘어, 사상 최대를 기록하고 있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접근성이 높고, 인구 수준으로 확대할 수 있으며, 비대면으로 서비스되는 디지털 치료제가 주목을 받고 있다. 소프트웨어로 우울증, 불면증, 스트레스, 불안, ADHD, 조현병 등을 치료하거나 완화해주려는 것이다. 이는 구글 검색어 트렌드로도 파악되는데, 정신과 대면 상담 관련 키워드 검색은 최근 줄어드는 반면, 원격 정신 상담과 같은 키워드의 검색이 크게 증가하고 있다. 이번 상반기에는 이 분야에 대한 투자 금액, 투자 건수 역시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특히, 지난 4월 FDA는 판데믹 상황에서 국민의 정신 건강을 위해 디지털 치료제에 대한 규제를 대폭 완화했다. 정신 질환에 대해서는 디지털 치료제를 (최소한의 요건만 지키면) 인허가 없이 시장에 출시할 수 있도록 한시적으로 허용한 것이다. 디지털 치료제는 소프트웨어이기 때문에 기본적인 위험성이 크지 않기 때문에 가능한 결정이다. 이에 따라 각종 디지털 치료제가 시장에 출시되어 활용되고 있다. 이렇게 코로나19 판데믹 상황에서 디지털 치료제를 적극 활용하는 곳은 미국 뿐만 아니라, 영국, 독일, 호주 등 점차 늘어나고 있다. 이러한 국가에서는 특히 국가 의료 보험에서 디지털 치료제에 대한 비용을 지불하기로 했다.
판데믹이라는 특수한 상황에서 이뤄진 한시적 결정일 수도 있겠으나, 결과적으로 이러한 디지털 치료제가 현장에서 활용되면서 의료진과 환자의 경험과 함께 실세계 데이터(Real World Data)가 선제적으로 축적되고 있는 상황이다. 디지털 치료제를 포함한 디지털 헬스케어 분야는 아직 증명할 것이 많기 때문에, 현장에서 실제로 사용되면서 축적되는 실세계 데이터의 중요성이 매우 높다.
코로나19 감염 관리가 잘 되지 않는 미국 등 외국에서, 다른 대안이 없기 때문에 디지털 치료제 등을 더 적극적으로 활용한다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그러한 상황에서 축적되고 있는 실세계 데이터는 해당 기술의 정확성, 효과성, 안전성, 비용 대비 효과 등을 정밀하게 파악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이는 향후 큰 차이를 만들어낼 가능성이 있다.
한국에서도 최근 뉴딜정책의 일환으로 비대면산업의 육성 의지를 천명하고 있고, 혁신의료기기 지정 등에 대한 법령이 제정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뚜렷한 방향성이 잘 보이지 않거나 변죽만 울리는 경우가 많다. 특히 각종 지원책에는 공통적으로 의료 수가 부분이 빠져 있다. 아무리 지원사업이 많아도 결국 혁신 의료기술을 개발한 회사가 사업성이 있기 위해서는, 더 나아가서 산업을 육성하기 위해서는 합리적인 수가의 제정 없이는 공허한 구호에 그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