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turday 30th November 2024,
최윤섭의 디지털 헬스케어

[칼럼] 한국의 헬스케어 산업, 사막에도 꽃은 피는가

** 제가 매일경제신문에 기고한 칼럼입니다. 원문은 여기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얼마 전 식약처는 “스마트 헬스케어 2018”이라는 컨퍼런스를 개최했다. 예년과는 달리 천 명 이상의 많은 참석자 등록하여 디지털 헬스케어에 대한 관심을 대변했다. 필자는 다른 전문가들과 함께 패널토의에 참석해서 과연 한국의 디지털 헬스케어 산업에 희망이 있는지, 또한 이 산업이 성장하려면 무엇이 필요한지 논의했다.

사실 아직 한국에는 디지털 헬스케어 산업이 존재한다고 보기 어렵다. 산업이 존재한다는 것은 무엇보다 일정 숫자 이상의 기업이 존재해야 한다. 그러한 기업이 매출을 올리고 영업 활동으로 인해서 고객은 유의미한 가치를 받아야 한다. 그 과정에서 기업에 대한 투자와 회수도 이뤄진다. 이러한 잣대로 보면 한국에 아직 이 산업은 존재하지 않는다. 무엇보다 아직 국내 디지털 헬스케어 기업은 100개도 넘지 않으며, ’유의미한 매출이 발생’한다는 기준을 덧붙이면 그 숫자는 더 줄어든다.

미국, 중국을 비롯한 다른 나라들은 디지털 헬스케어 산업이 엄청난 호황을 누리며 빠르게 달려가고 있다. 최근 미국에서 디지털 헬스케어 분야의 투자는 해마다 기록을 경신하며 폭발적으로 성장하고 있다. 2017년에 역대 최대 규모의 투자가 이뤄졌으나, 이미 올해는 3분기까지의 투자만으로 벌써 작년의 기록을 또 한 번 갈아치웠다.

글로벌 대기업도 속도를 올리고 있다. 애플은 애플워치의 의료기기 승인을 받았고 (한국에는 이 기능이 제외된 채 출시된다), 아마존은 의약품 배송 스타트업인 필팩을 인수하였으며 (의약품 배송은 한국에서 불법이다), 구글은 의료 인공지능에 혁신적인 성과를, 우버는 환자를 병원에 실어나르고 (한국에서는 환자 유인 행위로 불법이다), 알리바바는 원격진료를 (역시 불법이다), 사노피 등 다국적 제약사들은 소위 디지털 신약을 개발하는 스타트업과 활발한 협력을 이어가고 있다.

이는 모두 남의 나라 이야기다. 한국에서는 이런 혁신을 기대하기는커녕, 차라리 불법이 아니면 다행인 지경이다. 시장이 작고, 규제는 많으니, 매출이 발생하기도 어렵고, 그러니 투자도 적다. 어디부터 해결해야 할까.

필자는 패널 토의에서 ‘사막에도 꽃은 핀다’는 선문답 같은 이야기를 했다. 한국은 디지털 헬스케어 산업의 불모지이다. 뿌려지는 씨앗의 수도 적고, 토양도 메말랐으며, 좀처럼 비도 내리지 않는다. 여기에서 씨앗은 창업자, 토양은 규제 등의 창업 여건, 비는 투자 정도가 될 것이다.

이 산업의 성장을 위해 필요한 것을 한 가지만 꼽아달라는 말에 필자는 ‘더 많은 씨앗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일정 숫자 이상의 스타트업이 있어야만 그중에서도 혁신적인 사례가 나올 수 있다. 특히 시장의 니즈를 정확히 읽고, 이를 효과적으로 공략하는 창업자가 많아져야 한다. 한국은 일단 헬스케어 스타트업의 수가 절대적으로 너무 적다. 하지만 역시 씨앗을 늘리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사실 지금은 시장에 투자금도 많이 풀려 있어, 비도 많이 내리는 시기이다. 하지만 척박한 토양을 비옥하게 바꾸지 않고서는 많은 씨앗도, 내리는 비도 소용이 없다.

필자의 회사는 지난 10월 말에 삼성서울병원에서 성균관대학교와 함께 헬스케어 해커톤을 공동 개최했다. 의사, 개발자, 디자이너 등이 1박 2일 밤을 새우며 아이디어를 구상하고 구현도 하는 행사이다. 올해가 3년째인데, 특이하게도 이번에는 아이디어를 미리 제출해서 검토받도록 했다. 왜냐하면 작년까지 참가자들이 현장에서 내어놓는 아이디어의 상당수가 한국에서는 불법이었기 때문이다. 이런 아이템을 일일이 걸러내다 보니, 행사의 진행 자체에 차질이 생겼다. 고심 끝에 이번에는 아이디어의 위법성 여부를 미리 알려주기로 한 것이다. 혁신적인 아이디어가 있으면 먼저 위법성 여부부터 따져야 하는 것이 우리의 웃지 못할 현실이다.

사막에도 분명히 꽃은 핀다. 수많은 씨앗 중에서 양분도 필요 없고, 물이 없어도 살 수 있는 희귀종이 있다면 말이다. 최근 이러한 환경에서도 업계에서는 거의 최초로 IPO까지 성공한 자랑스러운 스타트업도 있다. 하지만 이러한 예외적인 사례를 결코 일반화해서는 안 된다. 사막에서는 꽃이 피는 것이 오히려 비정상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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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out The Author

디지털 헬스케어를 통해 의료를 혁신하고 세상을 더 건강하게 만들고자 하는 벤처투자자, 미래의료학자, 에반젤리스트입니다. 포항공대에서 컴퓨터공학과 생명과학을 복수 전공하였고, 동대학원에서 전산생물학으로 이학박사를 취득했습니다. 스탠퍼드 대학, 서울대학교병원 등에서 연구하였습니다. 현재 디지털 헬스케어 스타트업 전문 투자사, 디지털 헬스케어 파트너스 (DHP)를 2016년에 공동창업하였고, 대표를 맡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40여 개의 디지털 헬스케어 스타트업에 투자하였습니다. 네이처의 디지털 헬스케어 분야 자매지 『npj 디지털 메디슨』의 편집위원이자, 식약처, 심평원의 전문가 협의체 자문위원입니다. 『디지털 헬스케어: 의료의 미래』 『의료 인공지능』 『헬스케어 이노베이션』 등을 집필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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