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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정부에서 여러 번 논란이 되었던 원격의료의 허용 여부가 이번 정부에서도 또다시 이슈가 되고 있다. 원격의료만큼 의료계의 반발을 불러일으키는 뜨거운 감자도 없다. 또한 한국처럼 원격의료가 명시적으로 금지된 나라도 사실은 찾아보기 어렵다. 과연 무엇이 문제이기에 이런 논란이 계속 되풀이되는 것일까. 원격의료 문제의 실마리를 어떻게 찾을 수 있을지, 어떤 오해와 근본적인 난관이 있는지를 짚어보려 한다.
먼저 원격의료와 원격진료를 구분해야 한다. 현재 전문가들도 이 용어를 혼용하며 문제를 더 복잡하게 만드는 경우가 적지 않다. 원격의료는 상당히 넓은 개념이며 환자에게 제공하는 방식을 기준으로 다양한 유형이 존재한다. 원격의료의 다양한 유형 중의 하나가 바로 원격진료다. 즉, 원격의료의 부분집합이 원격진료라고 보면 된다.
의료계에서는 원격진료라고 하면 흔히 ‘화상 진료’를 떠올리지만, 이외에도 세부적인 유형은 많다. 사실 미국에서는 화상보다 전화나 이메일을 통한 진료가 더 사용된다. 뿐만아니라, 진료 기록이나 의료 영상 및 병리 사진을 전송하여 2차 소견을 제공하는 서비스나, 스마트폰 앱과 디바이스로 심전도나 피부 사진 등을 측정하여 소견을 받는 서비스도 있다.
더 나아가, 원격진료는 아니지만, 원격의료에 포함되는 서비스도 있다. 원격 환자 모니터링(Remote Patients Monitoring)이 대표적이다. 환자가 착용한 웨어러블 기기, 사물인터넷 센서, 혹은 삽입형 의료기기에서 지속적으로 만들어내는 데이터를 병원에서 모니터링하는 방식이다. 원격 환자 모니터링이 만성질환 환자의 건강 개선에 유의미한 효과가 있다는 근거가 도출되고 있으며, 올해부터 미국에서는 보험 적용도 된다.
국내 의료계에서도 이 원격 환자 모니터링은 합법화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있다. 대한부정맥학회에서는 삽입형 제세동기(ICD)의 원격 모니터링은 허용해달라고 주장한다. 부정맥 환자에게 이식하는 이 기기는 원래 원격 모니터링 기능이 있음에도, 국내에서는 그 기능을 차단한채 사용하는 실정이다.
두 번째로 원격의료의 허용이 의료 산업을 활성화할 가능성은 별로 없다는 점을 이해해야 한다. 이번 정부에서도 이 부분을 오해하고 있다. 한국에서 의료는 수익성이 매우 낮은 산업이다. 단일 건강보험과 요양기관 당연지정제에 따라 모든 의료 행위의 가격을 정부에서 정해놓고 있으며, 의료계의 주장대로 그 가격은 낮은 실정이다. 때문에 병원의 수익성은 악화되며 적자를 내는 병원도 많다. 문재인 케어에서 의료기관의 수익성은 더욱 악화될 것이다. 원격의료도 여기에서 예외일 수는 없다.
사실 ‘의료 산업’을 이야기하려면 영리법인병원 허용이라는 또 다른 큰 이슈가 관여하게 된다. 현재 한국에서 주식회사와 같은 영리법인은 병원을 설립할 수 없다. 하지만, 이를 차치하고서라도, 기본적으로 기업은 돈이 안 되는 일을 하지 않는다. 안타깝지만 한국에서 의료는 돈이 안 된다.
더구나 한국은 의료 접근성이 매우 높아서 원격의료에 대한 니즈가 떨어진다. 한국에서는 아프면 의사를, 그것도 전문의를 동네 병원에서 쉽게 만날 수 있다. 원격진료가 폭발적으로 성장하고 있는 미국에서는 그 주요 요인이 낮은 의료 접근성에 있다. 미국에서는 1차 병원을 예약한 뒤 평균 2~3주 이후에야 진료를 받을 수 있다. 작년 통계에 따르면 보스턴이 최악으로 예약 후 100일 이상을 기다려야 한다. 이런 환경에서 원격진료는 환자에게 매우 매력적인 옵션이다. 예를 들어, 미국 원격진료 시장의 선두 기업인 텔라닥(Teladoc)은 10분 내에 의사를 만나게 해주겠다고 광고한다. 하지만 이러한 제안이 한국에서는 상대적으로 매력도가 떨어진다.
때문에 한국에서는 원격의료의 필요성이 낮다. 하지만 여기서 한 가지. ‘필요 없다’와 ‘금지해야 한다’는 구분해야 한다. 필요 없고, 수익성이 낮다고 해서 반드시 금지시켜야 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또한 수익이 낮고 니즈가 낮아도, 원격의료가 의료 서비스의 다양성을 높임으로써 환자에게 새로운 의료적 가치를 제공할 가능성도 있다.
세 번째로 원격의료의 허용이 최소한 격오지의 환자에게라도 가치를 제공하려면, 의약품 배송과 같은 이슈도 함께 논의되어야 한다. 격오지에는 병원뿐만 아니라, 약국도 없다. 즉, 원격으로 진료와 처방을 받더라도, 약을 받으려면 환자는 결국 약국을 찾아서 집밖으로 나가야 하는 상황이다. 원격의료가 실효성을 가지려면, 의약품도 집에서 원격으로 받아볼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의약품 배송도 금지되어 있으며, 이는 약업계에서 반발하는 또 하나의 이슈이다. 참고로 미국과 중국에서는 이 규제가 없으며, 아마존과 알리바바는 최근 의약품 배송업에 진출하기도 했다.
더욱 근본적인 문제는 붕괴된 의료전달체계다. 한국에서는 감기 환자도 대학병원 응급실에서 진료받을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동네병원은 대학병원과 경쟁해야 하고, 대학병원은 경증환자까지 진료하느라 허덕인다. 응급실에서 진료받아야 하는 위급한 환자도 피해를 본다. 이런 상황에서 원격의료를 무작정 도입하는 것은 의료전달체계의 혼란을 더욱 가중시킬 수 있다. 너무 거대담론일 수 있지만, 원격의료의 도입을 위해서는 의료전달체계의 개선을 먼저 논의할 필요가 있다.
결국 이 모든 것은 신뢰의 문제이다. 해결하기 가장 어려운 문제이며, 가장 근본적인 문제이기도 하다. 정부는 의료계를, 의료계는 정부를 믿지 못한다. 정부는 그동안 의료계의 목소리를 반영하지 못한 채 정책을 시행하기도 했고, 또 의료계도 내부 의견을 수렴하고 정부와 효과적으로 소통하지 못한 측면이 없지 않다. 현 상황에서는 정부가 내어놓는 안에 의료계는 반발부터 하며, 정부는 의료계의 근본적인 문제와 요구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다.
요약하자면, 원격의료는 무척이나 복잡한 이슈다. 일단 문제나 논의의 범위부터 제대로 정의되어 있지 않다. 또한 시행의 결과에 대한 이해나, 더 근본적인 문제의 해결 없이 표면적인 이슈만 반복해서 제기되고 있다. 그 과정에서 이해관계자들 사이의 불신은 쌓여만 간다.
가장 아쉬운 점은 원격의료가 이미 정치 이슈화되어 토론조차 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해외에서는 허용되는 것이 한국에서는 왜 안 되는지, 한국의 의료 시스템에는 어떤 근본적인 특성이 있는지, 원격의료에 앞서 해결해야 할 의료 시스템의 모순은 없는지, 원격의료가 의학적으로 얼마나 근거가 있으며, 환자에게는 얼마나 도움을 줄 수 있는지 등을 논의할 수조차 없다.
의료는 국민의 건강을 책임지는 사회의 근간이며, 복지이자 산업이기도 하고, 논리와 근거로 판단하는 과학이기도 하다. 그만큼 특수하며, 복잡하고 다양한 이해관계가 얽혀 있다. 과연 어디서부터 실마리를 찾아가야 할까. 사회적 협의와 이해관계자들의 신뢰가 없는 이상 안타깝게도 그 실마리를 찾기란 쉽지 않아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