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헬스케어의 발전은 보험도 혁신하고 있다. 현재 디지털 헬스케어의 혁신은 결국 데이터에 기반한 것이다. 한 사람의 건강, 질병, 생활 습관에 대한 데이터가 양적, 질적 측면 모두에서 극적으로 개선될 뿐만 아니라, 이를 분석할 수 있는 인공지능도 발전하고 있다. 또한 이에 기반하여 건강을 유지하고, 질병을 관리할 수 있는 수단도 늘어나고 있다.
이는 결국 보험을 근본적으로 바꿔놓을 수 있다. 기존에 보험은 사후적, 수동적이었다. 사고가 나거나, 병에 걸리거나, 치료를 받은 이후에야 보험사가 개입한다. 하지만 디지털 헬스케어를 활용하면 선제적, 능동적 보험으로 변모할 수 있다.
이와 관련해 가장 기본적인 모델은 걸음수, 즉 활동량을 기반으로 보험료를 인하해주는 등 금전적인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것이다. 연구에 따르면, 활동량은 그 사람의 전반적인 건강, 의료 비용, 혹은 입원 시의 퇴원 기간 등과 상관관계가 있다. 따라서 금전적인 인센티브를 적절히 제공하면, 보험사는 장기적인 비용을 줄이고, 보험 가입자는 재정적 수익도 올리고, 건강도 개선하는 구조가 나올 수 있다.
하지만 최근의 디지털 헬스케어의 발전은 건강 상태나 질병 관리 등에 대한 더 직접적이고 방대하며, 더 가치 있는 데이터를 얻을 수 있게 해준다. 이를 기반으로 보험사는 더 선도적이고 능동적인 대처를 할 수도 있다.
대표적인 것이 최근 삼성화재나 KB생명 등에서 출시한 당뇨병 환자 대상 보험이다. 특히 삼성화재가 출시한 당뇨 환자 보험에는 휴레이포지티브라는 국내 스타트업에서 개발한 마이헬스노트라는 스마트폰 어플리케이션이 함께 제공된다. 이 스타트업은 앱만 사용하더라도 효과적인 혈당 관리가 가능하다는 것을 강북삼성병원과의 임상 연구를 통해서 증명하였다. 이 결과는 지난 2월 사이언티픽 레포트에 발표되었는데, 이 앱을 6개월간 사용한 환자들의 당화혈색소 수치가 대조군에 비해서 유의미하게 감소한다. 이렇게 당뇨병 약과 같은 효능을 보이는 앱을 당뇨 보험에 가입한 환자들에게 제공하는 것이다. 이러한 경우 당뇨 환자는 보험을 통해 본인의 건강을 관리할 수 있어서 좋고, 보험사는 장기적 비용을 낮출 수 있어서 좋다.
더 나아가서는 데이터를 바탕으로, 디지털 헬스케어 기업이 보험을 만들기도 한다. 미국의 빔 테크놀러지는 스마트 칫솔을 만드는 스타트업으로 시작하여, 최근에는 치과 보험까지 출시했다. 스마트 칫솔을 이용하면 보험 가입자가 얼마나 치아 관리를 잘하는지에 대한 정량적인 데이터를 얻을 수 있으므로, 이를 통해 보험료를 조정하는 모델이다. 현재 미국의 16개 주에서 서비스되고 있는데, 연말까지 35개 주로 확대하는 것이 목표라고 한다.
사실은 좀 더 과감한 기술들도 있다. 통화 빈도, 통화 길이 등 스마트폰 사용 패턴에서 우울증 여부를 파악하거나, 트위터 등 소셜 네트워크의 내용과 사용 패턴에서 우울증, 조현병 등의 정신 건강 상태를 파악할 수 있다. 또한 먹는 센서를 활용하면 처방받은 약을 얼마나 잘 복용하고 있는지를 알 수 있고, 더 나아가서 아예 유전자를 분석하면 몇몇 질병의 경우 발병 위험도를 꽤나 정확하게 알 수 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이런 데이터의 활용은 프라이버시 침해의 소지가 있고, 남용될 위험도 있다. 하지만 이미 이러한 수준까지 기술은 발전해 있으며, 앞으로 더욱 발전할 것이다.
기술의 눈부신 발전은 양날의 검과 같아서 더 많은 가능성을 열어주지만, 또 한 편으로는 세심한 주의도 필요하다. 먼저 보험사의 입장에서는 임상적으로 증명된 기술을 활용해야 한다. 데이터의 측정, 분석, 활용 및 건강 관리를 위해 제공하는 서비스 등은 과학적, 임상적으로 정확성, 안전성, 임상적 유효성 등에 대한 명확한 근거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현재 디지털 헬스케어 분야에서는 많은 임상 연구들이 진행되고 있으며, 유망한 결과들이 나오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디지털 헬스케어 제품과 서비스 중에서 임상적 증명이 부족한 것들이 많다.
또한 데이터의 소유권, 데이터 보안, 프라이버시 문제가 철저하고 사려 깊은 원칙 하에 해결되어야 한다. 특히 건강과 질병에 관한 정보는 극히 민감한 정보다. 보험 가입자에게 소유권과 권한이 주어져야 하며, 특히 데이터 활용에 대한 동의도 가입자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수준에서 이뤄져야 한다. 최근에 유럽에서 시행된 개인정보보호 규정(GDPR) 등도 참고할 필요가 있다.
뿐만 아니라, 보험이 선제적, 능동적으로 발전하려면 그러한 새로운 보험 모델이 의료 행위에 해당하는지 여부에 대한 법적 해석도 필요하다. 질병의 관리와 관련된 서비스는 의료법상 의사만이 할 수 있는 의료행위에 해당될 수 있으므로, 이 부분에 대한 명확한 해석이 필요하다. 이를 위한 민관 합동 법령해석TF가 올해 초 출범했지만, 아직 활동은 미미한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디지털 헬스케어를 보험에 적용하여 새로운 모델을 만들기 위해서는 넘어야 할 산도 많고, 조정해야 할 이해관계도 많다. 특히 악마는 디테일에 있으므로, 신중하게 고려해야 하는 문제들이 산적해 있다. 하지만 이러한 어려움을 해결하고 좋은 모델을 만들 수 있다면 보험 가입자, 보험사, 건강 관리 서비스, 의료계 모두 만족할 수 있는 윈윈 모델이 만들어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기술 혁신이 모든 것을 해결하는 것은 아니지만, 더 효과적이고, 더 저렴하며, 더 접근성 높고, 새로운 가치를 제공할 수 있는 기술은 기존에 해결하지 못했던 문제의 돌파구를 마련할 수도 있다. 이미 준비는 곳곳에서 시작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