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turday 30th November 2024,
최윤섭의 디지털 헬스케어

디지털 신약이 온다

병원에서 ‘약’을 처방받았다고 하면 어떤 형태를 떠올리는가? 알약이나 가루약, 혹은 주사를 떠올리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현대 의학에서 약이라고 하면 주로 알약 형태의 저분자 화합물(small molecule)이나, 주사로 투약하는 단백질 바이오 신약(biologics)를 의미한다.

하지만 이제는 약의 종류에 또 한 가지가 추가되어야 할 것 같다. 바로 ‘디지털 신약(digital therapeutics)’이다. 최근 MIT 테크놀러지 리뷰는 이런 디지털 신약이 저분자 화합물과 단백질에 이은 새로운 약이 될 수 있다고 이야기 했다. 또한 작년 9월 미국 FDA는 피어 테라퓨틱스(Pear Therapeutics)의 스마트폰 앱을 대마, 알콜, 코카인 등의 중독 치료 효과를 바탕으로 ‘디지털 약’으로 인허가한 것이 화제가 되었다. 이렇게 디지털 헬스케어의 발전에 따라 최근 앱, 웨어러블, 챗봇, 게임, VR 등 다양한 종류의 ‘디지털 신약’이 등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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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어 테라퓨틱스의 중독 치료 앱, 리셋(reSET)

많은 디지털 신약은 임상 연구를 통해서 질병을 효과적으로 치료하거나 예방한다는 것을 이미 증명했다. 일부는 규제기관의 인허가받았을 뿐만 아니라, 사용을 위해 의사가 처방을 해야 하며, 심지어 의료 보험의 적용이 추진되는 경우도 있다. 따라서 비록 알약이나 주사는 아니지만, 이를 ‘약’이라고 불러도 무리는 없을 것이다.

먼저 VR(가상현실)을 활용한 PTSD(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치료 사례를 보자. PTSD는 전쟁이나 테러 등 끔찍한 일을 겪은 후 트라우마가 남아 일상생활에도 지장을 겪는 질병이다. PTSD 환자들은 통제된 상황에서 해당 기억에 지속해서 노출되는 ‘지속 노출 치료’를 받는다. 연구자들은 VR이 군인의 PTSD 치료에 효과적이라는 것을 증명했다. ‘버추얼 이라크’ 등의 VR 솔루션을 통해 환자는 마치 전쟁터로 다시 돌아간 느낌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시가지, 검문소, 사막 등의 다양한 시나리오를 상담사들이 실시간으로 컨트롤하면서 환자들은 치료 효과를 얻는다. VR을 이용한 치료 결과 환자들의 PTSD 수치 및 불안, 우울 정도가 유의미하게 감소하였으며, 미국 국방성은 이를 군인들의 치료에 활용하고 있다.

Senior Airman Joseph Vargas, a pharmacy technician with the 779th Medical Support Squadron, uses the Virtual Iraq program at Malcolm Grow Medical Center's Virtually Better training site on Andrews Air Force Base, Md. on June 25, 2009. The 79th Medical Wing is one of eight wings to use this new technology to treat patients suffering from post traumatic stress disorder. (U.S. Air Force photo by Senior Airman Renae Kleckner)(released)

버추얼 이라크의 활용 장면 (출처)

챗봇으로 우울증을 치료하기도 한다. 워봇(Woebot)은 스탠퍼드 대학의 심리학 전문가들이 만든 우울증 치료용 챗봇이다. 이 챗봇은 상담사처럼 채팅을 통해서 상담을 제공하며, 환자의 정신 건강을 체크한다. 딥러닝 분야의 권위자인 앤드류 응(Andrew Ng) 교수가 최근 참여하면서 화제가 되었던 이 스타트업은, 챗봇을 2주간 사용할 경우 우울증 수치(PHQ-9)가 대조군에 비해서 유의미하게 감소한다는 연구 결과를 2017년 내어놓기도 했다. 특히 이러한 챗봇은 시간과 장소에 상관없이 사용할 수 있으므로 환자의 편의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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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증 상담 챗봇, 워봇

게임을 통한 ADHD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를 치료하려는 회사도 있다. 미국의 퓨어테크 헬스는 ‘새로운 개념의 제약회사’를 추구하는 회사다. 이 회사의 홈페이지에는 개발 중인 신약 파이프라인에 저분자 화합물과 함께 알킬리(Akili)라는 게임이 당당하게 포함되어 있다. 이 회사는 게임을 통해 인지능력을 향상시킬 수 있다는 연구를 2013년 네이처에 발표한 데 이어, 정교하게 디자인된 아이패드 게임을 통해 소아 환자의 ADHD를 완화시킬 수 있다는 많은 연구 결과들을 내어 놓았다. 이 회사는 현재 이 게임의 치료용 FDA 인허가를 받기 위한 대규모 3상 임상시험을 진행 중이다. 인허가를 받은 후 의사의 처방을 받아서 사용하며, 의료 보험의 적용도 받는 게임으로 만드는 것이 목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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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DHD 치료용 게임, 알킬리

눔(Noom)이나 오마다 헬스(Omada Health) 등의 스마트폰 앱은 당뇨병 예방 효과를 인정받았다. 이러한 앱은 식단의 기록이 주 기능이나 휴먼 코칭과 결합되어 체중 감량 효과가 있다는 것을 입증했다. 눔이 2016년에 사이언티픽 레포트에 발표한 논문을 보면 6개월 이상 앱을 사용한 35,921명의 데이터를 바탕으로 77.9%의 사용자에게서 체중 감량 효과를 확인했다. 특히 23%의 사용자는 본인 체중의 10% 이상 감량했으며, 이는 약물치료 등 다른 비만 관리 기법과 비슷한 체중 감량 효과이다. 이 앱은 미국 질병통제센터(CDC)로부터 체중 감량을 통한 당뇨병 예방 효과를 인정받아, 조만간 의료 보험까지 적용받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noom figure눔의 체중감량 효과(출처)

국내 스타트업인 휴레이포지티브는 앱을 통한 당뇨병 환자의 효과적인 혈당 관리가 가능하다는 것을 강북삼성병원과의 임상연구를 통해서 증명하였다. 지난 2월 사이언티픽 레포트에 발표된 논문에 따르면, 제2형 당뇨병 환자가 6개월 동안 모바일 앱을 사용하면 당화혈색소 수치가 0.6% 감소한다. 대표적인 당뇨약인 메트포민(Metformin)이 당화혈색소를 1~1.5% 감소시키는 것을 고려하면, 이는 결코 적지 않은 수치이다. 이러한 효과를 인정받아 이 앱은 당뇨병 환자 대상의 한 보험 상품에 포함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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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레이 포지티브 스마트폰 앱의 당화혈색소 감소 효과 (출처)

지면 관계상 모두 소개하지는 못했지만, 이외에도 우울증, 불면증이나 고혈압을 치료하기 위한 웨어러블이나, 뇌졸증 재활을 위한 장갑 등 다양한 혁신들이 이미 시도되고 있다. 이러한 방법들은 비록 기존의 약의 형태와는 다르며, 제약사가 아닌 디지털 기술을 활용한 회사에 의해 개발되고 있으나, 환자를 치료하고 질병을 예방한다는 점은 같다. 이렇게 디지털 신약의 등장은 약의 범주를 더욱 확장할 뿐만 아니라, 향후 제약 산업의 지형도 상당 부분 바꿔놓을 것으로 예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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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out The Author

디지털 헬스케어를 통해 의료를 혁신하고 세상을 더 건강하게 만들고자 하는 벤처투자자, 미래의료학자, 에반젤리스트입니다. 포항공대에서 컴퓨터공학과 생명과학을 복수 전공하였고, 동대학원에서 전산생물학으로 이학박사를 취득했습니다. 스탠퍼드 대학, 서울대학교병원 등에서 연구하였습니다. 현재 디지털 헬스케어 스타트업 전문 투자사, 디지털 헬스케어 파트너스 (DHP)를 2016년에 공동창업하였고, 대표를 맡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40여 개의 디지털 헬스케어 스타트업에 투자하였습니다. 네이처의 디지털 헬스케어 분야 자매지 『npj 디지털 메디슨』의 편집위원이자, 식약처, 심평원의 전문가 협의체 자문위원입니다. 『디지털 헬스케어: 의료의 미래』 『의료 인공지능』 『헬스케어 이노베이션』 등을 집필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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