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day 02nd December 2024,
최윤섭의 디지털 헬스케어

한국의 헬스케어 규제, 이것부터 바꿔라

*본 칼럼은 제가 매일경제신문에 기고한 것입니다. 원문은 여기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필자의 연구소에서는 작년 말 국내 디지털 헬스케어 스타트업 대표들에게, 한 해를 마무리하고, 새해를 준비하는 의미에서 설문조사를 진행한 적이 있다. 그 결과 2018년 국내 산업에서 개선되기를 바라는 점으로 스타트업 대표들은 예상대로 대부분 불합리한 규제의 개선을 꼽았다.

의료 및 헬스케어 산업에서 규제의 개선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너무 지나친 규제는 기술 혁신을 저해하지만, 너무 느슨한 규제는 환자의 안전을 위협한다. 어느 쪽이든 불합리한 규제는 산업계뿐만 아니라, 결국 환자들에게도 피해를 준다. FDA는 이미 몇 년 전부터 의료 혁신을 장려하고, 환자가 혁신의 혜택을 적시에 받을 수 있도록 근본적인 규제 혁신을 지속해 오고 있다. 특히 작년에는 디지털 헬스케어 분야에서 제품이 아닌 제조사 기반의 규제로의 전환을 천명했다.

문재인 정부는 최근 규제혁신 토론회, 해커톤 등을 개최하면서 규제 개선에 대한 의지를 보여주고 있다. 사실 현장에서 느끼는 변화는 여전히 미미하지만, 이번 정부는 다를 수 있다는 일말의 희망을 품고 우선적으로 개선되어야 할 규제를 몇 가지 짚어보려 한다.

가장 먼저 지적할 부분은 역시 네거티브 규제의 도입이다. ‘합법으로 규정한 것 외에는 모두 불법’인 한국의 포지티브 규제 하에서 혁신은 불가능하다. ‘불법으로 규정한 것 외에는 모두 허용’하는 네거티브 규제로 전환만이 기술 혁신을 유도할 수 있다. 최근 규제혁신 토론회에서는 유전자 치료 연구에 한해서 포괄적 네거티브 방식을 도입하기로 했다. 하지만 이런 규제는 특정 연구 주제에 국한되지 않고, 더 넓은 분야에 적용되어야 할 것이다.

두 번째로는 문재인 케어에서 혁신 기술의 무조건적이고 일괄적인 급여화로 기술 혁신을 저해하지 않을 방편이 필요하다. 혁신의 미래 가치나 활용 범위는 미리 계산하기가 불가능하다. 하물며 정부가 완전히 새로운 기술의 가치를 적정하게 평가할 수 있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따라서 혁신 기술에 대해서는 문재인 케어 하에서 별도 트랙으로 논의하거나 예외적인 조항을 두는 것이 필요하다. 지난 4차산업 혁명위원회의 규제 해커톤에서는 ‘가치 기반 평가 트랙’의 논의가 이루어졌으나, 아직 구체적인 방안까지 다뤄지지는 않았다.

세 번째로는 개인 유전 정보 분석의 DTC 서비스 (병원을 거치지 않고 소비자에게 직접 판매)가 허용되어야 한다. 유전정보 분석의 DTC는 한국이 글로벌과 규제의 격차가 큰 정도가 아니라, 아예 독자적이고 기형적인 기준을 가진 대표적인 사례이다. 미국 FDA는 유전 정보 분석의 DTC 서비스는 의료기기 인허가가 필요하다는 기존 방침에서, 더 전향적으로 바뀌고 있다. 특히 정해진 기준에 대해서 최초 한 번 인허가를 받은 회사는, 이후로 다른 검사는 추가적 인허가 없이 출시할 수 있도록 추진 중이다.

한국은 2016년 DTC를 제한적으로 허용한다며, 탈모, 카페인 대사 등 12개 항목을 제외하고는 DTC 서비스가 모두 불법으로 규정하고, 심지어는 검사 가능한 유전자 목록까지도 정해놓았다. 규제의 갈라파고스화를 더욱 심화시키는, 차라리 손대지 않음만 못한 규제 개악이었다. 최근 규제혁신 토론회의 결과 DTC가 의료행위가 아니며, 따라서 소비자 광고를 허용한다는 방침이 내려졌다. 이러한 해석에 따르면 광고에 그치지 않고, 소비자에게 직접 유전자 분석 서비스의 시행을 확대하는 것도 충분히 고려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네 번째로는 의료 데이터가 개인정보는 보호하되, 의료 빅데이터나 인공지능 등의 연구에 활용될 수 있도록 관련 법규를 개선해야 한다. 현재 개인정보보호법, 의료법 등에서는 건강정보의 범위, 의료정보와 일반건강정보의 구분, 개인건강식별정보의 정의가 불명확하다. 또한 익명화의 정의 및 범위도 모호하며, 의료 데이터의 특수성이 반영되어 있지 않다. 이는 미국의 HIPAA 등 관련 법규와 비교하면 명확성이 크게 떨어진다. 정부가 4차 산업 혁명을 장려한다고 하면서도, 이런 불명확한 법규 때문에 의료 빅데이터나 인공지능 연구자들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 불법과 합법의 경계를 넘나드는 실정이다.

다섯 번째는 원격 환자 모니터링이다. 원격의료에는 화상, 전화 등으로 환자를 진료하는 원격 진료뿐만 아니라, 사물인터넷 센서, 웨어러블 등으로 병원 밖 만성질환 환자의 수치를 모니터링하는 원격 환자 모니터링(remote patients monitoring)도 있다. 원격 진료는 논외로 치더라도, 당뇨병, 고혈압, 심장질환 환자 등에 대한 원격 모니터링은 질병 관리에 도움을 줄 수 있다. 데이터 분석 기술과 센서의 발달에 따라 해외에서는 이 분야에 대한 연구가 활발하며, 관련 서비스의 출시도 증가하고 있다. 특히, 미국에서는 최근 원격 환자 모니터링에 대한 보험 적용까지도 결정되었다. 미국에서도 원격 환자 모니터링은 사실상 원격 진료와 별도의 분야로 다루어진다. 여지껏 국내에서는 원격진료 논란 때문에 원격 환자 모니터링도 주목받지 못했지만, 이제는 별도로 논의해 볼 필요가 있다,

한 나라의 의료 산업의 수준은 결국 규제의 수준에 의해서 결정된다. 의료 규제가 비합리적이고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면, 기술 혁신과 산업 발전은 요원하며 결국 그 피해는 환자에게 돌아간다. 이번에는 필자가 그동안 규제 개선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오던 부분들을 과감히 지적해보았다. 지난 정부들과는 달리 문재인 정부는 현장의 목소리를 들으려 노력하고 있다. 이번에는 그 결과도 조금은 다를 것이라고 믿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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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out The Author

디지털 헬스케어를 통해 의료를 혁신하고 세상을 더 건강하게 만들고자 하는 벤처투자자, 미래의료학자, 에반젤리스트입니다. 포항공대에서 컴퓨터공학과 생명과학을 복수 전공하였고, 동대학원에서 전산생물학으로 이학박사를 취득했습니다. 스탠퍼드 대학, 서울대학교병원 등에서 연구하였습니다. 현재 디지털 헬스케어 스타트업 전문 투자사, 디지털 헬스케어 파트너스 (DHP)를 2016년에 공동창업하였고, 대표를 맡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40여 개의 디지털 헬스케어 스타트업에 투자하였습니다. 네이처의 디지털 헬스케어 분야 자매지 『npj 디지털 메디슨』의 편집위원이자, 식약처, 심평원의 전문가 협의체 자문위원입니다. 『디지털 헬스케어: 의료의 미래』 『의료 인공지능』 『헬스케어 이노베이션』 등을 집필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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