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네이쳐에는 구글(알파벳)의 생명과학 자회사인 베릴리(Verily)가 진행하는 “프로젝트 베이스라인(Project Baseline)”이 시작되었다는 소식이 보고되었습니다.
이 프로젝트는 무려 4년간 10,000명에 달하는 개인의 건강 상태를 면밀하게 추적하여 데이터를 축적하는 것이 골자입니다. 축적하는 데이터는 두 가지 종류의 디바이스를 통한 심박수와 수면패턴 및 유전 정보, 감정 상태 (self-reported survey), 진료기록, 가족력, 정기적인 소변/타액/혈액 검사 등 다양한 데이터를 포괄합니다. 개별적인 검사는 스탠퍼드 대학병원과 듀크 대학병원에서 진행하게 됩니다.
디지털 의료에 있어서 ‘데이터’의 중요성은 ‘디지털 의료는 어떻게 구현되는가’ 시리즈에서 누누이 강조드린 바 있는데요. 구글의 이러한 프로젝트는 ‘베이스라인’ 이라는 이름이 의미하는 바와 같이 개별적인 사람의 건강 상태와 질병에 걸린 상태 자체를 다양한 차원의 데이터를 통해서 새롭게 정의하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당연히 개개인을 오랜 기간 동안 추적하면서 건강과 관련된 다차원적인 데이터를 ‘측정’ 하고 ‘축적’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오랜 시간과 막대한 비용이 들어가는 이 어려운 일을 구글이 앞장서서 하고 있는 것입니다.
건강에 대한 구글맵 만들기
이러한 데이터를 통해서 개별 환자의 건강을 증진시키거나, 어떤 경우에 뇌졸중이나 발작 같은 응급상황이 오는지를 파악/예측할 수도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제가 2015년에 스크립스 중개과학 연구소의 컨퍼런스에서 (기사에도 언급되는) 이 프로젝트를 이끄는 제시카 메가(Jessica Mega) 박사님과 이야기 해본 적이 있었는데요. 이 분은 하버드 의대 교수를 하시다가 갑자기 구글에 스카웃 되면서 화제가 되었던 분이기도 합니다. 메가 박사님은 프로젝트 베이스라인을 ‘건강에 대한 구글맵을 만드는 것’ 에 비유하였습니다. 우리가 현재 어느 위치에 있으며, 어디에 가장 차가 많이 막히고, 어디가 최단 경로인지를 알기 위해서는 일단 ‘지도’가 필요할 것입니다.
사실 의학은 질병 상태에 있는 환자를 파악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하지만 완전히 ‘건강한 상태’가 무엇인지, 혹은 질병이 발병하기까지 건강한 단계로부터 오랜 기간에 걸쳐 어떠한 단계를 거치는지에 대해서는 밝혀지지 않은 것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이를 이해하게 되면 개개인의 환자에 대해서 질병을 예방, 예측하고 치료하기 위해서 중요한 통찰을 얻을 수도 있습니다.
프로젝트 베이스라인을 통해 다양한 건강상태, 유전형, 생활습관을 가진 10,000명의 사람들을 추적 관찰하게 되면, 우리가 건강에 대한 ‘지도’를 가질 수 있을지 기대됩니다.
활동량 측정계와 수면 모니터링 기기
사실 저는 이 연구가 2014년에 ‘Baseline Study’ 라는 이름으로 처음 발표되며 이미 시작한줄 알았습니다만, 연구의 디자인과 웨어러블 개발을 거쳐서 최근에야 본격적으로 환자 모집이 시작된 것으로 보입니다.
버릴리가 이번 프로젝트에 사용한다고 공개한 시계 형태의 스마트 밴드
지난 4월에는 이 프로젝트에 활용될 스마트 워치인 ‘Study Watch’ 가 공개되었습니다. 이 손목 시계 형태의 기기는 그동안 간간히 프로토타입이 소개가 되었는데, 이번에 아주 예쁜 디자인으로 최종 공개 되었습니다.
이 시계는 심전도, 심박, EDA(electrodermal activity)와 관성 움직임(inertial movement) 등 심혈관계와 움직임과 관련된 질환에 대한 데이터를 측정한다고 되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이 베이스라인 프로젝트의 파트너들은 파킨슨병의 정밀의료와 관련된 프로젝트를 진행합니다. 파킨슨병의 환자들이 수년 동안 움직임 등의 바이오메트릭이 어떻게 변화하는지를 파악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됩니다. (사진만 봐서는 심전도 측정은 어려울 것 같은데.. 정확한 스펙이 나와 있지 않아서 파악이 어렵습니다)
특히, 이 기기에는 장기간의 추적 연구를 위한 세심한 배려가 들어 있습니다. 저전력 디스플레이를 통해서 배터리 수명을 일주일로 늘렸으며, 큰 데이터 저장 공간 및 데이터 압축을 통해서 실험 참여자들이 일주일에 한 번만 데이터를 동기화하면 된다고 합니다. 매트리스 아래에 까는 형식의 센서를 통해 수면 모니터링을 한다고 합니다.
이런 장기간의 연구에는 사용자들의 순응도(compliance)가 매우 중요합니다. 현재 웨어러블 디바이스의 가장 큰 문제가 순응도가 낮다는 것인데요. 참여자들이 기기를 착용하지 않게 되면 축적되는 데이터 자체가 없으므로 연구의 기반 자체가 흔들립니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 좋은 사용자 경험을 제공하기 위한 다양한 요소를 배치한 것으로 보입니다.
또한 침배 매트리스 아래에 까는 형태의 기기로 수면 모니터링도 합니다. 이러한 유형의 기기라면 베딧(Beddit)이나 얼리센스(EarlySense)와 같은 형태를 상상해볼 수 있습니다. 모두 메트리스 아래에 위치하여, 사용자가 수면시의 패턴, 수면 퀄리티 및 심박수 등의 몇가지 바이오메트릭까지도 측정해볼 수 있는 기기입니다.
매트리스 아래에 까는 형태의 수면 모니터링 기기, 베딧(Beddit)
2017년 5월 애플에 인수되었다.
특히 베딧은 2017년 5월에 애플에 인수되었고, 얼리센스는 이스라엘 사물인터넷 스타트업인 얼리센스는 삼성이 2014년 인수한 이후로, ‘슬립센스’ 로 발전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되면 삼성, 애플, 구글의 거대 IT 기업이 모두 수면과 관련된 기기의 라인업을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다만 2016년 초에 출시할 것으로 기대를 모았던 삼성 슬립센스는 출시가 지연되면서 아직까지 시장에 출시되지는 않고 있습니다.
또한 베릴리에서 발표한 이 ‘Study Watch’의 성능도 궁금합니다. 사실 핏빗 등 현재 시중에 나온 손목에 착용하는 웨어러블이나 매트리스 아래에 까는 수면 모니터링 기기의 정확도나 성능은 대부분 제각각이라는 것이 기존 연구들에 밝혀져 있습니다 [1, 2]. 관련해서 구글에서 자체적으로 개발한 기기의 정확성은 어떨지 모르겠습니다. 해당 기기의 성능에 따라서 이 프로젝트에 이용되는 데이터의 퀄리티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구글이 만들면 핏빗보다 나을 것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각 웨어러블이 측정한 보행수가 상이 (JAMA 2015)
각 웨어러블이 측정한 에너지 소비량이 상이 (JAMA 2016)
정밀 의료라는 장기적 플랜
또한 기사에 따르면 현재 미국에서는 NIH에 의해서 이미 비슷한 종류의 스터디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오바마 정부에서 시작한 정밀 의료 이니셔티브 (PMI, Precision Medicine Initiative)의 일환인 ‘All of Us’ 프로젝트는 올해만 $230m 을 써서 스마트 밴드, 수면 센서, 환경 모니터링, 유전체, 마이크로바이옴 분석 등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목적은 Project Baseline 과 동일하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정부가 이런 정도의 통찰력을 가지고 장기적인 대규모 프로젝트를 할 수 있다는 것이 개인적으로 매우 부럽기도 합니다. 박근혜 정부에서 미국의 PMI를 벤치마킹 하려고 했다가 용두사미에 그친적이 있기도 합니다만.. 여튼 형식은 배껴올 수 있었겠지만, 정밀의료에 대한 근본적인 이해나 이 과제의 추진을 위한 과감성은 따라하기 어려웠던 것 같습니다.
사실 구글과 NIH의 이러한 프로젝트는 정밀 의료와 개인의 건강 유지, 질병의 발병에 대한 정의 자체를 바꿔버릴 수도 있고, 아니면 결국 돈 낭비에 불과한 실패한 프로젝트가 되어버릴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제 여러 센서와 기기의 발달, 유전체 분석의 발달로 개인의 건강에 대한 양적/질적으로 새로운 종류의 데이터를 측정할 수 있게 되었고, 이 데이터를 분석할 수 있는 인공지능 기술 등도 나날이 발전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대규모의 실험군에서 얻은 다차원적 데이터를 통해서 개별적인 사람의 건강과 질병에 대한 새로운 통찰력을 얻을 수 있으리라는 믿음은 꽤나 합리적으로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