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CNBC 등에서 ‘애플이 애플워치에 들어갈 무채혈 연속혈당측정 기능을 개발하고 있다’ 는 기사가 나오고 있습니다. (익명의 제보자에 따르면) 애플에 스티브 잡스 시절부터 비밀리에 30명 규모의 관련 팀을 꾸려왔으며, 최근에는 팀 쿡이 직접 애플 캠퍼스에서 이러한 기능이 포함된 신규 애플 워치의 프로토타입을 차고 다닌다고도 단독 보도 하였습니다.
또한 팀 쿡이 자기 모교인 University of Glasgow의 강의에서 ‘지난 몇주 동안 연속 혈당계를 착용했으며, 강의 오느라고 방금 벗어두고 왔다’ 는 식의 언급을 했다고도 알려져 있습니다. 다만, 그 연속혈당계가 메드트로닉, 덱스콤 등의 기존 제품인지, 아니면 애플에서 자체적으로 개발한 제품의 프로토타입인지는 밝히지 않았다고 합니다.
꿈의 기술: 무채혈 연속 혈당 측정
무채혈, 연속혈당계(CGM)는 당뇨병 환자에게 있어서 꿈의 기기와 다름 없습니다. 현재의 혈당계는 보통 손가락 끝에서 피를 내어야 하며, 이마저도 그 순간의 혈당 수치를 보는 것이지 연속적인 혈당 변화의 추이를 실시간으로 볼 수는 없습니다.
다만 메드트로닉, 덱스콤 등에서 개발한 연속혈당계가 이미 많은 당뇨병 환자들에 의해서 활용되고 있습니다. 이 기기를 착용하면 5분 정도에 한번씩 거의 실시간으로 혈당의 변화를 모니터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복부 등에 별도의 센서를 부착하고 다녀야 하는 불편함이 있으며, 효소 반응을 이용한만큼 센서의 수명은 일주일 정도로 길지 않습니다. 가격도 고가입니다.
만약 혈당을 비침습, 연속적으로 측정할 수 있는 기술이 개발된다면 전 세계 당뇨병 환자들의 삶을 완전히 바꿔놓을 수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킬러 어플리케이션이 없다고 비판 받아온 애플 워치에 만약 이런 기능이 들어간다면, 애플 워치는 삽시간에 전 세계 당뇨병 환자들의 필수 기기가 될 수도 있습니다.
사실 애플의 스마트워치에 혈당 측정 기능이 들어갈 것이라는 이야기는 결코 이번이 처음은 아닙니다. 몇년 전 애플이 소위 ‘iWatch’ 라고 불리는 스마트 워치를 개발한다는 루머가 돌 때부터, 이 기기에 들어갈 헬스케어 기능과 의료 센서에 대해서는 여러 추측이 난무했습니다.
결론적으로 아직은 심박 센서 정도밖에 들어가지 않았지만, 애플워치 출시 이후에 월스트리트저널 등 몇몇 믿을만한 기사에 따르면 애플은 원래 산소포화도, 혈압, 심전도 등의 센서의 개발도 직접 진행했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 기사에는 애플이 막대한 리소스를 투입했음에도 센서의 기능이 애플 내부 기준에 미치지 못했다고 언급되어 있습니다.
특히 센서의 기능이 일부 사람들에게는 안정적이지 않았는데, 예를 들어 털이 많거나 피부가 건조한 사람 등에 대해서는 잘 작동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만약 혈압, 심전도 등의 측정 기능이 포함된다면 애플 워치가 의료기기로 분류되어, 판매를 위해서는 FDA의 인허가 과정도 거쳐야 하기 때문에 이 역시 부담이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C8 메디센서의 파산과 그 이후
사실 애플 워치에 무채혈 연속 혈당 측정도 예전부터 가능성이 제기되던 이야기입니다 [1, 2, 3]. 이 가능성에 가장 큰 근거를 주는 것이 바로, 지금은 파산해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실리콘밸리의 C8 메디센서 (Medisensor)라는 스타트업 때문입니다. 이 회사는 라만 스펙트로스코피(Raman Spectroscopy)라는 광학 기술을 사용해서 ‘빛’을 피부로 쏘아서 글루코즈 분자에 빛이 반사되는 원리를 이용하여 피를 뽑지 않고 연속적으로 혈당을 측정하는 혁신적인 기술의 개발에 도전하던 기업이었습니다.
C8 메디센서의 프로토타입
C8 메디센서는 상용화까지는 많은 숙제들이 남아 있었지만, 기술적으로 보아서는 상당히 많은 진전을 이루었다고 평가 받는 기업이었습니다. “기술적인 측면에서 보자면, 우리는 중요한 성취를 이뤄냈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우리가 이뤄냈던 것조차도 원래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라고 이 회사의 전 CEO인 Rudy Hofmeister는 언급한 바 있습니다.
하지만, 혈당 측정의 일관성(consistency) 문제와 생산 단계에서 품질 관리 등에 문제를 보이면서, 결국 사업 자금을 투자유치하는데 실패하여 2013년 파산하고 말았습니다. 당시 MIT Tech Review 에서는 C8 메디센서의 실패 스토리를 자세하게 정리한 바 있습니다. 라만 스펙트로스코피의 빛은 피부 깊숙히 투과하지 못하기 때문에, 피하에서 계산한 수치로 혈당을 추정해야 했습니다. 이 때문에 개인별로, 심지어는 한 사람 내에서 측정하는 신체 부위에 따라서 계산의 차이가 있었다고 했습니다. 이외에도 대표에게 몇가지 개인적인 불운도 겹치면서 결국 이 회사는 파산하고 말았습니다.
사실 이 C8 메디센서가 한창 주목받고 있을 때는 애플이 이 기업의 인수를 고려한다는 소문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 기업이 파산한 이후에 이 기업을 더 이상 인수할 필요가 없게 되자, 애플은 C8 메디센서에 근무하던 관련 기술자, 기계학습 전문가, 디자이너 등등의 인재들을 데려갔습니다.
그 중에는 Ueyn Block 이라는, C8 에서 Director of Optics and System Engineering 를 맡았던 분도 있습니다. 이 사람들이 애플에 영입될 때 당연히 화제가 되었습니다. 이 사람들이 애플에 합류한다면 혈당 측정과 관련된 기능의 개발에 종사할 것으로 예상되었기 때문입니다. 사실 CNBC 기사에 나온 ‘비밀팀’이라면 이런 분들이 주축이 되었을 것으로 추측해볼 수 있습니다.
정말 애플워치로 혈당을?
만약에 애플이 정말로 비침습 연속 혈당 측정 기능을 개발하고 있으며, 외부에서 개발된 또 다른 센서를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면, C8 메디센서가 개발하던 기술과 관련이 있을 수 있다는 추측이 가능하기는 합니다.
하지만 당시에 이 기업이 만들던 디바이스는 복부에 복대를 차고 부착하는 형태였는데 크기는 상당히 컸습니다. 이 회사가 파산한지 3-4년만에 이 기술이 완전히 구현되었다는 것도 상상하기 어렵지만, 더 나아가 이 기술이 애플 워치의 본체에 들어가거나, (AliveCor의 심전도 센서처럼) 시계 줄에 부착할 수 있을 정도로 소형화되었다는 것은 더욱 어려울 것으로 봅니다.
뿐만 아니라, 혈당 측정기는 당연히 의료기기입니다. 더구나 이렇게 완전히 새로운 종류의 의료기기가 개발되고, 판매되려면 기존의 혈당계와 동등할 정도의 정확성을 지니고 있으며, 환자에게 안전하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임상시험을 해야 하며 FDA 인허가도 받아야 합니다. 단순히 팀쿡이 사내에서 프로토타입을 착용하고 다닌다는 것 정도로 의료기기를 출시할 수는 없습니다.
애플이 기술 개발은 비밀리에 할 수도 있겠지만, 대규모 임상 시험을 진행하고 FDA 인허가 절차에 들어가면 대개 관련한 정보가 외부에 알려지게 됩니다. 일례로, 애플의 경영진이 애플워치 개발 전에 FDA와 미팅 한 것도 결국 언론에 알려졌었지요. 특히 ‘빛을 쏴서’ 혈당을 무채혈 연속 측정하는 꿈의 기술의 개발이 완료되고 임상에 들어가면 외부에 알려지지 않기가 어려울 것입니다.
하지만 아직 이러한 소식은 없는 것으로 보입니다. 따라서 매우 낙관적인 시각을 견지한다고 할지라도, 해당 기술은 애플 내부에서 POC (proof-of-concept) 정도가 끝나가는 단계가 아닌가 하고 추측해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물론 이런 기술의 POC도 매우 어렵고 가치있는 일이며, 당뇨병 환자들의 삶 자체를 완전히 바꿔놓을 수 있는 기술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기술 개발이 어디까지 왔는지는 관련 데이터가 나올 때까지 지켜봐야 하겠습니다.
한 가지 사족을 붙이자면, 이미 애플워치 앱으로는 덱스콤의 연속혈당계로 측정한 혈당 수치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애플워치의 출시 이후에 덱스콤에서 발빠르게 움직여서 혈당 수치를 애플 워치에 디스플레이해줄 수 있게 한 것입니다. 이 경우에 애플워치는 단순히 데이터를 보여주는 기능이므로 FDA의 규제 범위에 속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물론 믿을만한 제보자의 발언을 인용했다는 CNBC가 현재의 애플워치에서 이미 동작하는 이런 기능 정도로 특종으로 보도했을 것 같지는 않지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