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디지털 의료의 3단계’에서 두 번째 단계에 해당하는 데이터의 수집과 통합에 대해서 알아볼 차례다. 1단계에서 우리는 무수히 많은 종류의 데이터가 다양한 방식을 통해서 측정될 수 있다는 것을 살펴보았다. 그 데이터들은 체온, 혈당, 혈압, 산소포화도, 심박, 심박 변이도, 심전도, 호흡수, 혈류량, 안압, 복약 여부, 활동량, 자세, 수면, 고막 사진, 피부 사진, 목소리 패턴, 월경, 유전 정보에 이르기까지 그야말로 광범위하다.
“디지털 의료는 어떻게 구현되는가” 시리즈 보기
- 변혁의 쓰나미 앞에서
- 누가 디지털 의료를 이끄는가
- 데이터, 데이터, 데이터!
- 4P 의료의 실현
- 스마트폰
- 이제 스마트폰이 당신을 진찰한다
- 웨어러블 디바이스
- 개인 유전 정보 분석의 모든 것!
- 환자 유래의 의료 데이터 (PGHD)
- 헬스케어 데이터의 통합
- 헬스케어 데이터 플랫폼: 애플 & 발리딕
- 빅 데이터 의료
- 원격 환자 모니터링
- 원격진료
- 인공지능
한 가지 문제는 이러한 헬스케어 데이터의 형식이 매우 다양하다는 것이다. 앞서 열거한 데이터의 종류만 보더라도, 어떤 것들은 수치로 나타낼 수 있는 정량적인 데이터이며, 또 다른 데이터는 정성적인 데이터도 있다. 더 나아가서, 이 데이터는 숫자일 수도, 텍스트일 수도, 사진일 수도, 음성일 수도 있으며, 영상일 수도, 위치일 수도 있다. 정형화된(structured) 데이터일 수도 있고, 비정형(unstructured) 데이터일 수도 있다. 불연속적일 수도 있고, 연속적인 데이터일 수도 있다.
더 심각한 문제는 이렇게 다양한 데이터가 측정되는 ‘수단’은 더욱 더 다양하다는 것이다. 갈수록 더 많은 헬스케어 앱, 웨어러블 디바이스, 사물인터넷 센서, 휴대용 의료기기가 시장에 출시되고 있으며, 이는 모두 어떤 방식으로든 데이터를 만들어낸다.
심지어는 동일한 종류의 데이터가 여러 가지 다른 종류의 기기를 통해서 생산되며, 그 데이터의 형식이나 표준이 상이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가장 흔하게 측정되는 헬스케어 데이터인 ‘활동량’을 보자. 활동량을 측정할 수 있는 수단은 무척 다양하다. 손목에 시계처럼 착용한 기기를 이용할 수도 있고, 스마트폰에 있는 GPS로 이동 경로를 볼 수도 있다. 클립 형태로 옷에 부착한 센서나, 브래지어, 벨트, 깔창, 목걸이 등등의 다양한 기기들이 이미 활동량 측정을 목적으로 시장에 나와 있다. 이런 경우 ‘활동량’이라는 동일한 항목의 데이터가 다양한 방식으로 중복되게 측정되는 것이다.
한 사람의 총체적 건강 상태를 이해하려면
그런데 한 사람의 건강 상태에 대한 전체 그림을 가질 수 있으려면, 이러한 모든 데이터를 하나의 장소에 모으고 통합될 수 있어야 한다. 사람은 인생을 살아가면서 의료 데이터, 유전체 데이터, 환자 유래의 의료 데이터 등을 끊임없이 만들어낸다고 여러 번 강조한 바 있다. 이렇게 광범위하고 막대한 규모의 데이터를 통합해서 하나의 장소에 효과적이고, 안전하게 저장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퍼즐을 맞추기 위해서는 일단 모든 퍼즐 조각을 한 곳에 모아야 한다.
궁극적으로 이렇게 통합되어야 하는 데이터는 앞서 설명한 스마트폰, 웨어러블 등의 새로운 디지털 기기에서 나온 환자 유래의 의료 데이터뿐만 아니라, 전통적인 의미의 의료 데이터까지 모두 포괄한다. 진료기록, 처방 기록, 유전자 검사, MRI, CT, 초음파 등의 의료 영상 및 혈액 검사 결과에서 더 나아가 전장 유전체 염기서열이나, 미생물체(microbiome) 데이터 및 환자가 처한 주위 환경에 관한 데이터까지 말이다.
스크립스 중개과학연구소의 에릭 토폴 박사는 저서 ‘청진기가 사라진 이후 (The Patients Will See You Now)’에서, 이렇게 의료 데이터가 저장 및 통합되는 플랫폼을 구글 지도와 같은 GIS (지리정보시스템)에 비유하여 설명한 바 있다. 구글 지도에는 지형지물, 실시간 도로정보, 인공위성 사진, 스트리트뷰 등 여러 계층의 데이터가 하나의 지도 위에 겹쳐져서 특정 장소나 이동 경로에 대한 총체적인 정보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구글 지도처럼 다양한 수준의 의료 데이터를 통합한다면
그 사람에 대한 총체적인 건강 상태를 정의할 수 있을 것이다 (출처: Cell)
이처럼 한 사람의 건강에 대해서도 모든 데이터를 한 곳에 모으고 통하여 분석할 수 있다면, 한 개인의 건강과 질병 상태에 대하여 보다 통합적, 총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을뿐만 아니라 그 사람의 의학적인 본질을 다시금 정의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끊임없이 생산되는 모든 데이터가 실시간으로 축적되며, 이를 (인공지능 등에 의하여) 실시간으로 자동 분석 및 해석되고, 그 결과를 의료진과 환자가 받아볼 수 있다고 상상해보자. 그야말로 예방, 예측, 정밀 의료를 근본적으로 구현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실시간 데이터 축적과 통합, 이의 인공지능 분석 같은 부분은 너무 막연한 먼 미래의 이야기처럼 들릴 수도 있다. 하지만 이미 그런 변화는 곳곳에서 시작되고 있으며, 상당한 진척을 보이고 있는 곳도 많다. 구체적인 사례들도 앞으로 차차 살펴보게 될 것이다.
의료 데이터 통합의 어려움
하지만 한 사람의 총체적인 건강 상태를 파악하기 위해 모든 의료 데이터를 한 곳에 모으고 통합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문제가 아니다. 예를 들어서, 우리가 지금껏 살아오면서 진료를 받았던 데이터들이 어디에 저장되어 있는지 생각해보자. 일단 진료 기록은 내가 진료 받았던 모든 병원에 뿔뿔이 흩어져 있다. 한국에서는 대부분의 병원이 이제 전자의무기록(EMR)을 사용하므로 그나마 진료 기록이 디지털화되어 있으나, 10-20년 전의 진료기록만 하더라도 종이 차트에 기록되어 있는 것이 많을 것이다. 아직 전자의무기록이 보편화되어 있지 않은 외국의 경우라면 말할 것도 없다.
또한 이 진료 데이터의 원본을 얻기도 쉽지 않다. (앞서 이야기한 진료 데이터의 소유권 문제를 상기해보자) 병원에 방문하여 “나의 진료 기록을 가져가고 싶다”고 이야기하면 아마도 종이에 프린트를 해줄 것이다. 또한 MRI, CT 등의 영상 의료 데이터도 크게 다르지 않다. 만약 “내가 평생 동안 찍었던 모든 엑스레이, MRI, CT 영상을 모두 한 곳에 모으고 싶다” 고 한다면 지금 우리는 결국 그 병원들에 모두 일일이 방문해서 손수 CD에 복사된 사진을 받아와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앞에서 이야기했던 다양한 스마트폰 앱, 웨어러블 디바이스 등에서 측정한 데이터는 수집 및 통합이 용이할까? 종이 차트에 기록된 데이터에 비하면 수월하겠지만, 이 역시 쉬운 문제는 아니다. 가장 큰 문제는 역시 호환성(interoperability)이다.
의료 정보 경영 학회(HIMSS)의 정의에 따르면, ‘호환성이 있다 (interoperable)’는 것은 시스템이나 기기, 소프트웨어 등이 서로 데이터를 문제없이 주고받을 수 있고, 공유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기기와 시스템 간의 데이터를 교환하기 위한 호환성은 매우 낮은 경우가 많다. 결국 다양한 의료 데이터가 시스템과 기기 사이에 호환성을 가지기 위해서는 각 데이터에 대한 표준이 마련되어야 한다.
일반적으로 새로운 산업이 태동하는 시기에는 많은 기업들이 저마다 개별적으로 만든 상품이나 서비스를 내어 놓기 때문에 표준이 있을 수 없다. 하지만 산업이 성장함에 따라 표준에 대한 주도권을 잡기 위해서 기업들 간에 경쟁 구도가 생기기도 하고, 산업이 성숙해지면서 점차 표준이 자리를 잡아가게 된다. 헬스케어 산업에서도 의료 정보 등 다양한 데이터에 대해서 표준을 만들기 위해서 많은 전문가들이 노력하고 있지만, 아직까지 해결해야 할 숙제들은 남아 있는 상황이다.
(주석: 대표적인 의료 데이터 관련 표준단체로 HL7, ISO/TC 215, IHE 등이 있고, 다양한 표준안들을 개발하여 제공하고 있다. 또한 헬스케어 웨어러블 기기의 호환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아이오티비티(Iotivity)에서 관련 표준을 현재 개발하는 중이다.)
모든 의료 데이터를 통합하는 플랫폼
이렇게 모든 의료 데이터를 한 곳에 모으기 위해서는 결국 플랫폼이 필요하다. 모든 사람들로부터 끊임없이 생산되는 데이터를 저장하기 위해서 그 플랫폼은 저장 매우 공간이 커야 한다. 뿐만 아니라, 매우 높은 수준의 보안이 필요로 하며, 사용자 혹은 의료 생태계의 각 주체들이 필요할 때면 언제 어디서든지 접속하여 데이터를 저장하고, 공유 및 활용할 수 있어야 하므로 결국 클라우드 인프라를 활용하는 것 외에는 대안이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플랫폼을 과연 누가 만들어야 할까. 정부, 기업, 혹은 의료 기관이 이러한 플랫폼의 구축을 원할 수도 있겠지만, 현실적으로 기업이 주도할 가능성이 높다. 영리를 추구하는 기업이 개인의 의료 데이터 플랫폼을 구축하고 데이터를 다루는 것이 바람직한지 여부에 논란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이미 글로벌 IT 기업들은 그러한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으며, 사실상 그러한 흐름을 막기는 어려워 보인다. 이 기업들이 헬스케어라는 거대한 기회의 땅을 놓칠 리 없기 때문이다.
구글, 애플, 삼성, 마이크로소프트, IBM, 퀄컴 같은 기업들이 헬스케어 데이터 플랫폼을 만드는 대표적인 기업들이다. 특히, 개인 사용자 및 환자의 입장에서 그러한 클라우드에 접속하고 데이터를 저장, 공유, 검색하기 위해 가장 간편한 통로는 역시 스마트폰이 될 수밖에 없다. 현재 사물인터넷 생태계에서 허브의 역할을 하는 것 역시 스마트폰이며, 사용자가 어떤 방식으로든 ‘환자 유래의 의료 데이터’를 측정, 저장, 전송, 활용할 때에는 스마트폰을 거치게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런 의미에서 구글, 애플, 삼성 등 스마트폰과 관계된 IT 기업들이 이러한 플랫폼을 구축하는 방향으로 움직이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흐름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런 글로벌 IT 기업들이 구축하고 있는 헬스케어 플랫폼은 저마다 세부적으로는 다소 차이가 있다. 하지만 헬스케어 데이터를 클라우드에 축적 및 통합하고, 이를 환자, 보호자, 병원, 보험사, 제약사, 연구자 등 의료 생태계의 다양한 주체들이 활용할 수 있게 하는 단일 인터페이스를 만들겠다는 방향성에는 크게 차이가 없어 보인다.
환자, 병원, 보험사 등 의료 생태계의 주요 주체들의 입장에서도 이러한 플랫폼이 제공하는 단일화된 인터페이스가 필요할 것이다. 병원을 예로 들어보자. 애플과 협력하고 있는 보스턴의 베스 이스라엘 디코네스 메디컬 센터(Beth Israel Deaconess Medical Center)의 최고 정보 책임자 존 하람카(John Halamka) 교수는 25만 명에 달하는 병원의 환자들 중에 상당수가 죠본업(Jawbone’s UP)이나 무선 체중계 등의 다양한 기기에서 데이터를 측정하고 있다면서, “병원에서 이 모든 환자들이 사용하는 기기에 대한 인터페이스를 만들 수 있을까요? 불가능합니다. 하지만 애플이라면 가능하지요”라고 이야기한다.
이 기업들은 사용자(환자)가 플랫폼에 저장한 의료 데이터에 직접 접근하고 그 데이터를 들여다볼 수는 없을 것이고, 그렇게 해서도 안된다. 하지만 일단 사용자가 해당 플랫폼에 가입하고, 막대한 규모의 데이터를 저장해놓는 것만으로도 과금을 하거나, 여러 부가 서비스를 붙일 수 있다. 또한 그 데이터를 환자들, 혹은 환자의 동의를 받은 의료 생태계의 다양한 참여자들이 활용하는 과정에서 플랫폼은 수익을 창출하는 방법을 구상하게 될 것이다. 마치 애플의 앱스토어가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그러한 수익 모델의 일부를 앞으로 살펴볼 몇 가지 헬스케어 플랫폼에서도 엿볼 수 있다.
천리길도 한 걸음부터
다만 한 가지 언급해야 할 것은, 앞서 언급한 모든 종류의 의료 데이터를 통합하는 플랫폼, 에릭 토폴 박사가 개인의 GIS 라고 명명한 플랫폼의 구축은 아직까지는 꽤 요원해 보인다는 점이다. 이상적인 헬스케어 데이터 플랫폼이라면, 병원의 전자의무기록(EMR)에 저장된 진료기록, 의료영상 저장전송 시스템(PACS)에 저장된 CT, MRI, 초음파, 내시경 사진, 병리과 검사 결과 등의 의료 영상을 포함한 (전통적인 의미의) ‘의료 데이터’와 앞서 설명한 웨어러블 기기, 스마트폰 등으로 얻은 환자 유래의 의료 데이터(PGHD), 그리고 유전체 염기 서열 등의 데이터를 모두 통합할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아직까지 구글, 애플, IBM 등의 글로벌 IT 기업이 구축하고 있는 플랫폼도 이러한 모든 헬스케어 및 의료 데이터를 포괄하지는 못한다. 특히 개인 유전 정보의 통합까지 고려하는 곳은 거의 없는 실정이다. 궁극적으로는 이 모든 데이터를 저장하고 다루는 것을 목표로 하겠지만, 그 과정에 있는 지금은 일부분에서 시작하여, 추후 단계적으로 데이터의 범위를 확장하는 방식으로 나아가게 되리라 예상한다.
삼성, 애플, 구글 등의 글로벌 IT 기업과 관련 스타트업들이 헬스케어 플랫폼을 구축을 시작하면서 가장 먼저 다루기로 한 데이터는 다름 아닌, 환자 유래의 의료 데이터이다. 앞서 언급했듯이 이 데이터는 현재 디지털 의료 데이터의 전체 그림에서 아직 채워지지 못한 큰 퍼즐 조각이다. 뿐만 아니라, 스마트폰 앱, 웨어러블 디바이스, 사물인터넷 센서 등을 통해서 디지털화된 데이터가 측정되어 스마트폰을 거쳐가게 되므로 IT 기업들이 우선적으로 접근하기가 용이한 데이터라고 할 수 있다.
이번에 설명한 헬스케어 플랫폼에 대한 개념적인 이야기가 다소 막연하게 들렸을 수도 있겠다. 이제는 실제 사례들을 살펴볼 차례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많은 플랫폼 중에서, 글로벌 IT 기업 중에서 가장 많은 진전을 보이고 있는 플랫폼 하나와 실리콘 밸리 스타트업 중에서 주목할만한 기업의 사례를 또 하나 살펴보려고 한다. 애플의 헬스키트(HealthKit)와 실리콘밸리의 발리딕(Validic)이 그 주인공이다.
(이 글을 작성하는데 경희대학교 컴퓨터공학과 신수용 교수님, VUNO의 감혜진 박사님께서 도움을 주셨습니다.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