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 칼럼은 제가 매일경제에 기고한 것입니다. 분량 제한 때문에 실리지 못했던 원글을 올려드립니다. 매경의 칼럼은 여기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당뇨병은 인슐린이라는 혈당을 조절하는 호르몬의 분비가 부족하거나, 정상적으로 제어되지 않는 대사 질환의 일종이다. 정상인의 경우 혈당 수치가 너무 높거나 낮아지면 인슐린의 분비가 조절되어 혈당을 일정하게 유지해야 한다. 하지만 당뇨병 환자의 경우 이러한 신체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게 된다. 당뇨병은 다양한 합병증을 동반한다. 혈당이 너무 낮으면 의식을 잃고 심한 경우 사망에도 이를 수 있다. 또한 장기적으로 눈, 신장, 심장 등에 각종 질환을 야기시키기도 한다.
이러한 당뇨병은 인류를 통틀어 19명 중에 한 명이 걸릴 정도로 매우 흔하고도 심각한 질병이다. 한 조사에 따르면 세계적으로 4억 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제 2형 당뇨병으로 고통 받고 있으며, 그 수는 계족 증가하는 추세이다. 당뇨병 관리를 위한 의료비 지출은 매년 약 4천억 달러에 달하며, 이는 무려 총 의료비의 10%에 해당하는 수치이다. 더구나 2020년까지 당뇨병 환자의 수는 5억명, 의료비 지출은 7천억 달러까지 상승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당뇨병은 만성질환으로 환자들은 평생 혈당을 관리하면서 살아가야 한다. 식사를 하거나, 간식을 먹거나, 운동을 하는 등의 지극히 일상적인 활동이 혈당을 크게 변화시킬 수 있기 때문에 자신의 혈당을 하루에도 여러 번 측정해야 하는 것이다. 전통적인 방법은 직접 바늘로 손가락을 찔러 피를 낸 후, 이를 휴대용 혈당계로 측정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전통적인 혈당계의 경우 여러 단점이 있다. 일단 피를 내야하기 때문에 불편하고도 고통스러우며, 한 순간의 혈당 수치는 알 수 있지만 시시각각 변하는 혈당 변화 추이를 지속적으로 관찰할 수는 없다. 예를 들면, 내가 특정 음식을 먹거나, 특정한 운동을 어떠한 강도로 할 때, 혹은 수면 중에 혈당이 어떻게 변화하는 과정에 있는지를 기존의 혈당계로는 알기 어렵다.
손가락 끝을 찔러 피를 내어 측정하는 전통적인 방식의 혈당계
때문에 최근에는 연속혈당계가 개발되어 환자들에게 인기를 얻고 있다. 기존의 혈당계와는 달리 이는 복부에 패치형태의 혈당 센서를 부착하게 된다. 피하에 삽입된 미세한 센서를 통해서 일주일 정도 혈당 변화의 추이를 거의 실시간으로 관찰할 수 있다. 식사를 하거나 운동을 하면서, 또한 수면 중인 환자의 수치를 관찰할 수 있다. 특히 소아당뇨병 환자의 경우, 야간 저혈당증의 여부를 알기 위해 자고 있는 아이의 손가락을 찌르지 않아도 혈당을 알 수 있으므로 편리하다.
당뇨병 환자는 지속적인 혈당 수치 측정을 통해서 자신의 질병을 효과적으로 관리할 수 있다. 때문에 이미 1970년대부터 미국의 의사들은 당뇨병 환자들에게 스스로 혈당을 자주 체크할 것을 권고해왔다. 하지만 연구에 따르면 당뇨병 환자들은 혈당 측정을 싫어하거나 거부감을 나타내기도 한다.
이렇게 매우 필요하고 직접적인 효용을 얻을 수 있음에도 당뇨병 환자들이 혈당 측정을 하지 않는다는 ‘당뇨병 패러독스’는 헬스케어 분야에 있어서 매우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일반적인 서비스나 상품의 경우 고객의 니즈가 크고 효용을 제공할 수 있으면 성공할 확률이 높아진다. 하지만 당뇨병 환자들의 경우를 보면 헬스케어에 있어서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필자는 비록 짧은 기간이긴 하지만 당뇨병 환자와 같은 생활을 해보았다. 부끄럽지만 헬스케어를 연구하는 사람임에도 그 동안 실제로 혈당 관리를 해볼 기회는 없었다. 그러던 차에 한 내분비내과 의사 선생님으로부터 연속혈당계를 체험해볼 수 있는 기회를 얻었기 때문이다. 간호사의 도움을 받아 복부에 연속혈당계 센서를 삽입하고, 일주일 동안 당뇨병 환자와 같은 생활을 해보았다.
나는 연속혈당계의 칼리브레이션을 위해 매일 식사 전과 잠자리에 들기 전에 혈당을 측정해서 기록하고, 어떤 음식을 언제 얼마만큼 먹었는지를 상세하게 기록해야 했다. 식단 기록도 번거로웠지만, 역시나 혈당 측정이 너무도 힘들었다. 혈당 측정을 위해서는 일단 볼펜처럼 생긴 기기로 내 손가락을 찔러서 피를 내야 한다. 일단 일회용 바늘을 새 것으로 교체하고, 기기를 당겼다가 버튼을 누르면 탁하고 침이 튀어나와서 내 손가락을 찌르게 된다. 그렇게 피가 나면 혈당계의 전용 시험지에 혈액을 묻혀서 혈당 수치를 확인하고 이를 기록한다.
무엇보다 피를 내는 과정이 적지 않은 스트레스였다. 순간적으로 따끔한 것이 크게 아프지는 않았으나, 내 스스로 손가락을 찔러서 자해(?)하기 직전에는 항상 부담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며칠이 지나자, 예전에 찔렀던 부위를 또 찔러야 했다. 측정할 때마다 주섬주섬 혈당계 세트를 꺼내어서 일회용 바늘과 시험지를 교체하는 과정도 번거로웠다.
특히 이렇게 혈당 측정을 다른 사람들 앞에서 한다는 것도 부담스러웠다. 사회 생활을 하면서 다른 사람과의 식사자리에서 식전 혈당 측정을 하면 동석한 사람들에게 내가 당뇨병 환자라는 것을 알리는 꼴이된다. 필자도 그 일주일간 유난히 출장과 손님과의 식사가 많았는데, 그 때마다 다른 사람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혈당 측정을 해야 할지 고민하다가 매번 단념하곤 했다.
이러한 혈당 측정의 어려움은 결국 사용자 경험(user experience)이라는 것으로 요약 가능하다. 단순히 서비스나 제품의 기능과 효용 뿐만 아니라, 이를 사용하는 과정에서 긍정적인 경험을 얻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혈당계의 경우 환자들이 사용하는 과정에서 겪게 되는 경험이 너무도 좋지 않기 때문에 활용도가 떨어지고 거부감을 갖게 되는 것이다.
만약 이 번거로운 사용 과정을 보다 편리하게 만들 수 있으며, 특히 피를 내지 않고 비침습적인 혈당 측정이 가능해진다면 좋을 것이다. 최근 우수한 연속혈당계가 출시되고 있지만, 여전히 보정을 위해서는 매일 채혈이 필요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필자는 일주일 간의 혈당계 체험 이후에 다시 편안한 일상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당뇨병 환자들은 이 번거로운 과정을 평생동안 해야 한다. 마치 시지푸스가 돌을 산으로 영원히 밀어 올리는 것처럼 말이다. 당뇨병 환자들의 이런 고통을 이해하는 전문가가 많아지기를, 그리고 좋은 치료법과 기기가 개발되어 그들의 삶을 개선시킬 수 있기를 바래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