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가 때아닌 포켓몬 열풍으로 들썩이고 있다. 구글의 사내 벤처였다가 독립한 나이언틱 랩스(Niantic Labs)가 개발한 ‘포켓몬 고’라는 스마트폰 증강 현실 게임 때문이다.
‘피카츄’ 등의 귀여운 몬스터 캐릭터로 잘 알려진 포켓몬스터의 역사는 1990년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포켓몬스터의 시초는 ‘몬스터볼’이라는 가상의 휴대용 기기로 몬스터를 포획하여 육성시키면서 서로 대결을 벌이는 게임 시리즈로, 1996년 일본에서 처음 발매되었다. 이후 애니메이션이나 만화 등으로도 제작되며 세계적인 인기를 끌었다. 최초에 150가지 몬스터로 시작한 포켓몬은 새로운 시리즈가 나올 때마다 캐릭터가 추가되어, 6세대까지 출시된 현재 몬스터의 종류는 총 720여 가지나 된다.
‘포켓몬 고’의 돌풍
최근에 출시된 ‘포켓몬 고’는 이 포켓몬 게임 시리즈의 스핀오프로, 증강 현실(augmented reality) 기술을 활용한 것이다. 가상 현실(virtual reality)이 컴퓨터 안에 완전히 별도의 현실을 구축하는 것이라면, 증강 현실은 현실 세계를 보완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아이언맨이나 터미네이터 등의 영화에서 주인공이 안경이나 특수한 렌즈를 통해 사람이나 사물을 바라보면 그 대상의 정보가 시야에 디스플레이 되는 것이 증강현실의 대표적인 사례이다.
스마트폰의 ‘포켓몬 고’ 앱을 켜고 화면을 통해서 세상을 바라보면서 특정 장소로 이동하여 포켓몬을 포획하고, 알을 부화시키고, 진화시키며, 전투에도 참여할 수 있다. 기존의 게임은 컴퓨터 앞에 앉아서 캐릭터를 모니터 내의 특정 장소로 이동시키는 것이었다면, ‘포켓몬 고’는 실제로 사용자가 앱의 지도를 보고 주요한 장소로 걸어서 이동해야 아이템이나 경험치를 얻을 수 있다.
이 게임은 출시 직후, 그야말로 폭발적인 반응을 일으켰다. 현재 호주, 뉴질랜드, 미국, 독일, 영국 5개국만 출시되었음에도, 하루만에 미주 지역 앱스토어 다운로드/매출 1위에 올랐으며, 나이언틱 랩스의 지분을 가진 닌텐도의 주가가 보름만에 120%나 상승했다. 또한 출시 후 닷새 만에 하루 사용자 수 기준으로 트위터를 초과했으며, 하루 평균 매출이 100만불을 넘고 있다. 하루 평균 사용 시간 기준으로 페이스북, 스냅챗, 트위터, 인스타그램을 모두 능가할 정도다. 아직은 단기적이지만, 이미 미국에서 ‘포켓몬 GO’는 대표적인 모바일 앱이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국에는 ‘포켓몬 고’가 아직 출시되지 않았지만, 잘 알려졌듯이 속초시 인근에서는 게임이 가능하다. 구글 지도를 기반으로 만들어진 이 게임은 한국의 지도 데이터 해외 반출 불가 정책으로 국내에서는 실행할 수 없다. 하지만 구글 지도의 지역 구분 원리 특성 때문인지 속초에서는 게임이 가능하다는 것이 알려지며, 많은 사람이 속초로 몰려드는 기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한 때 속초행 버스가 매진되었으며, 속초시는 공식 SNS에 아예 보조 배터리 지도, 공공 와이파이 지도 및 게임에서 주요 장소인 ‘포켓스탑’ 및 ‘체육관’의 지도까지 제공하고 있을 정도다.
행동 변화: 근본적인 문제
그런데 헬스케어를 논하는 글에서 필자는 왜 밑도 끝도 없이 포켓몬을 이야기하고 있을까. 그 이유는 포켓몬이 헬스케어 분야에서 오랫동안 고민해오던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힌트를 제공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의 건강을 관리하고 질병을 예방 및 치료하기 위한 헬스케어 분야에서는 많은 경우 사용자들의 행동 변화를 이끌어내야 한다. 더 많이 운동하고, 건강한 식단을 유지해야 하며, 처방대로 약을 빠뜨리지 않고 복용해야 하고, 담배를 끊고, 정해진 시간에 혈당을 체크하도록 해야 한다.
하지만 사람들의 행동을 변화시킨다는 것은 지극히 어려운 일이다. 특히 대부분의 건강 행동은 귀찮고 번거로운 경우가 많으므로 사람들은 머리로는 필요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실천은 작심삼일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 헬스케어 기기를 만들거나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업자의 입장에서도 고객의 지속적인 이용률이 높지 않다면 해당 상품의 성패야 불보듯 뻔한 일이다. 그래서 많은 연구자들과 기업들은 사용자들에게 어떻게 동기를 부여하고 행동을 효과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을지에 대해 실로 다양한 시도들을 해왔다.
예를 들어, 핏빗(Fitbit)이나 눔(Noom) 같은 헬스케어 회사들은 사용자의 활동량을 증가시키고 꾸준히 식단을 관리하도록 유도하기 위해 사용자들 간의 경쟁을 유도하거나, 그룹을 지어서 서로 격려하게 하고, 인공지능이나 원격으로 인간 코치를 배정하여 피드백을 주기도 한다. 명품 액세서리 브랜드와 협업하여 디자인을 개선하기도 하고, 보다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사용자 경험을 디자인하기도 한다. 게임의 원리를 적용하여 앱이나 기기를 사용하면서 재미를 느끼게 하는 게임화(gamification) 전략을 사용하며, 보험사와의 협업으로 목표를 달성할 경우에 아예 금전적인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경우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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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렇게 다양한 시도들에도 불구하고 사용자에 동기 부여 및 행동 변화는 근본적으로 해결하지 못한 상황이다. 작년까지 세계적으로 무려 3천만 개의 기기를 누적 판매한 피트니스 트레커의 대명사 핏빗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통계를 보면 신규 구매자의 절반이 사용을 지속하지 못하고 이탈하는 문제를 보인다. 아래의 그림은 핏빗의 2015년 상장 당시의 자료로, 최근의 보고에 따르면 조금씩 유료사용자(Paid Active User, PAU)로 편입되는 비율이 높아지고 있다고 하지만 아직도 여전히 문제는 남아 있는 상황이다.
핏빗 구매 고객 중 유료 사용자(PAU)로 편입되는 비중은 절반 정도에 그치고 있다
‘의도치 않은’ 헬스케어 앱
이러한 맥락에서 ‘포켓몬 고’의 돌풍은 헬스케어 분야에 의미 심장한 메시지를 던져 준다. 바로 사용자들의 활동량을 자연스럽게 증가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앞서 언급했듯이 증강 현실을 이용한 ‘포켓몬 고’를 즐기기 위해서는 몬스터를 포획하거나 아이템을 얻기 위해서 지도를 보고 특정 장소로 실제로 걷거나 자전거를 타고 이동해야 한다.
또한 포켓몬 알을 부화시키기 위한 기준도 이동 거리다. 2km, 5km, 10km 등 더 먼 거리를 이동할수록 더 희귀하고 강한 몬스터를 부화시킬 수 있다. 특히, 사용자가 시속 30마일 (약 50km/h) 이상의 빠른 속도로 움직이면 게임의 여러 기능에 제한이 생기도록 설계 되어 있다. 때문에 자동차를 타고 움직이는 등의 꼼수를 쓰기도 어렵다.
더 많이 걸을 수록 더 희귀한 몬스터들을 부화시킬 수 있다
‘포켓몬 고’는 근본적으로 즐기는 것이 목적인 게임이며, 건강 관리용 솔루션은 아니다. 단지 게임을 플레이하기 위한 여러 방식 중의 하나로 사용자가 직접 움직여야 하는 형식을 택한 것뿐이다. 그런데 그 게임이 너무 재미있다 보니 사람들이 티비 앞을 떠나 집을 나서서 더 많이 걷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이다. 미국의 디지털 헬스케어 전문 매체인 ‘모비헬스뉴스’는 최근 ‘포켓몬 고’를 “가장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의도치 않은(unintentional) 헬스케어 앱 (the fastest-growing unintentional health app)”으로 지칭하기도 했다.
더 나아가 최근 워싱턴포스트는 ‘포켓몬 고’가 인구 전체의 활동량을 크게 증가시키고 있다고 보고하기에 이르렀다. 미국의 죠본업, 카디오그램 등 피트니스 트레커의 데이터를 보면 ‘포켓몬 고’의 출시 이후 사용자 전체 활동량이 폭발적으로 증가한 것을 알 수 있다. 일각에서는 “미국의 영부인 미셀 오바마가 아동 비만을 퇴치하기 위해서 지난 5년간 노력해왔으나, ‘포켓몬 고’는 이를 5일만에 풀었다” 는 우스갯소리가 나올 정도다.
카디오그램으로 측정한 포켓몬 GO 출시 전후의 인구 전체의 활동량 수준
죠본업으로 측정한 포켓몬 GO 출시 전후의 인구 전체의 활동량 수준
이렇게 헬스케어 분야에서 해결하지 못했던 사용자 행동의 변화를 갑자기 난데없이 나타난 ‘포켓몬 고’가 해결해버린 것이다. 물론 아직 단기적이기는 하지만, 지금까지 헬스케어 분야의 어느 누구도 단기적으로라도 이렇게 인구 수준의 행동 변화를 이끌어낸 곳은 전무하다고 할 수 있다.
과학, 그리고 예술의 영역
전례 없는 증강 현실 게임 ‘포켓몬 고’의 열풍은 이렇게 헬스케어 분야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사용자의 행동을 변화시키고 건강 행동을 하도록 동기를 부여하기 위해서는 사용자 스스로 그것을 위한 내적인 열망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너무 예쁘든, 멋있든, 재미있든 도저히 하지 않고서는 배기지 못할 만큼 말이다.
많은 경우 사업에 대해서는 고객의 통점(pain point)나 니즈(needs)에서 출발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특히, 고객의 필요(needs)가 있는 것인지, 혹은 없어도 되지만 있으면 좋은 것(wants)인지를 구분하며, 시장의 절실한 필요가 있는 것을 만들어야 한다고 이야기 한다. 전자는 흔히 진통제, 후자는 비타민에 비유하곤 한다. 비타민 보다는 진통제의 시장성이 크다는 것이다.
하지만 포켓몬 GO의 막대한 성공은 이러한 ‘비타민 보다는 진통제’ 라는 통념에 반기를 든다. 혹자는 이에 또 다른 비유를 추가해서, ‘진통제 보다도 마약…’을 만들어야 한다고 이야기하기도 한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강한 열망을 일으키는 비즈니스는 성공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사실 이는 매우 기본적인 원칙이면서도 해결하기는 지극히 어려운 문제이다. 몇 가지 특정 조건을 충족시킨다고 누구나 달성할 수 있는 것도 아니며, 고등학교 수학 문제처럼 공식으로 풀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사실 게임 산업에서는 모든 제작사가 이 고민을 한다. 단순한 진통제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간, 게이머들이 계속 플레이하고 싶은 중독성 높은 게임을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모든 게임사가 그러한 게임을 출시하지는 못하는 것을 보면, 이 문제가 얼마나 근본적으로 어려운지 알 수 있다.
‘포켓몬 고’ 열풍이 일자 국내 대기업에서 이미 몇 년 전 비슷한 형식의 증강 현실 게임을 만들었다가 실패한 사례가 언급되기도 했다. 이는 결국 비슷한 것이라도 누가, 어떠한 방식으로 구현하고, 어떠한 내용을 담느냐에 따라 결과에는 큰 차이가 있을 수도 있음을 의미한다. 많은 경우에 작은 디테일이 큰 부분을 결정짓기도 하며, 때로는 운과 같은 외부적인 요소와 맞물리는 것이 필요하기도 하다.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고 행동을 변화시킨다는 것은 그렇게도 어렵다. 이 분야가 과학일 뿐만 아니라, 예술의 영역이기도 한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