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turday 30th November 2024,
최윤섭의 디지털 헬스케어

[칼럼] 국내 유전 정보 검사의 DTC 제한적 허용에 부쳐

*제가 매일경제신문에 기고한 칼럼입니다. 분량 제한 때문에 다 실리지 못한 원본을 올려드립니다. 매경에 실린 칼럼은 여기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나의 유전 정보는 누구의 소유일까. 당연히 나 자신의 소유일 것이다. 하지만 내 유전자를 마음대로 검사할 수 있는지에 대한 질문이라면 문제가 조금 복잡해진다. 최근까지 국내에서 유전 정보 검사를 위해서는 반드시 의료 기관을 거쳐야만 했기 때문이다. 분석 목적이 암과 같은 질병의 예측이든, 혹은 대머리 유전자의 검사이든 말이다.

국내 관련 업계에서는 비의료기관, 즉 일반 기업도 소비자를 상대로 직접 유전자 검사를 시행할 수 있는 DTC (Direct-to-Consumer) 서비스의 허용이 오랜 숙원이었다. 유전자 분석 시장이 폭발적으로 성장하고 있는 미국에 비해 국내 시장이 미미한 것도 소비자 대상 DTC 서비스가 막혀 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많았다.

 

복지부, 6월 30일 DTC 제한적 허용

복지부는 작년부터 이 문제에 대해서 여러 방면으로 고심해왔으며, 지난 12월 ‘생명윤리 및 안전에 관한 법률’ 개정에 이어, 1월 업무보고에서 ‘질병 예방 목적의 일부 유전자 검사를 비의료기관에서 직접 실시’ 하는 것을 허용할 예정이라고 공식적으로 발표한 바 있다.

그 결과 국내에도 ‘비의료기관 직접 유전자검사 실시 허용 관련 고시’가 제정 되며 지난 6월 30일부터 DTC 유전자 검사 서비스가 제한적으로 허용되기에 이르렀다. 체질량지수, 중성지방농도, 콜레스테롤, 혈당, 혈압, 색소침착, 탈모, 모발굵기, 피부노화, 피부탄력, 비타민C농도, 카페인 대사 등 12가지 검사 항목에 대해서다.

오랫동안 이 소식을 기다려온 국내 관련 회사들은 DTC 허용에 따라서 앞다투어 관련 상품을 출시하고 있다. 이에 따라, 향후 유전자 분석 키트를 집에서 받아보거나, 편의점에서도 구매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pgs dtc-1유전자 분석 업체별 DTC 서비스 (출처: 매경)

이렇게 일반인이 유전 정보 분석을 직접 의뢰하고 결과를 받는 것에 대해 일각에서는 오남용 가능성에 대한 우려를 표명하기도 한다. 김주현 대한의사협회 대변인은 “민간 기업에서 불명확한 정보로 환자를 현혹하거나 극단적으로는 태아의 성별 감별 후 불법적인 낙태 등의 비윤리적 행위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도 문제”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하지만 또 다른 한 편에서는 미국 등 다른 국가에 비해 DTC 서비스 여전히 지나치게 제한적이라고 불만을 가지기도 한다.

 

미국의 DTC 허용은

사실 DTC 유전자 검사의 허용 여부는 한국 뿐만 아니라 미국에서도 오랜 논쟁 거리였으며, 지금도 현재 진행형인 이슈이다. 대표적인 소비자 유전자 분석 기업인 23앤드미는 다른 경쟁사들과는 달리 DTC 방식의 서비스를 고집하며 많은 우여곡절을 겪었다.

구글 창업자 세르게이 브린의 아내인 앤 워짓스키가 2006년 창업한 이 회사는 질병 위험도 검사, 약물 민감도 검사, 유전 질병 인자 보유 검사, 일반적인 특징 검사 (곱슬머리, 유당 분석, 카페인 분석 등), 조상 분석 (내 조상이 어느 대륙에서 왔는지) 등의 다양한 분석을 저렴한 가격으로 수십 만 명에게 제공하며 승승장구 했다.

23andme customer23andMe 고객의 폭발적 증가 (마크로젠 금창원 팀장님의 데이터를 재구성)

그러던 2013년 11월 FDA는 이 회사에게 돌연 DTC 방식의 서비스를 금지하는 명령을 내리게 된다. 질병 분석 및 약물 분석을 소비자에게 직접 제공할 경우, 불필요한 치료를 받거나 약물 오남용이 우려되므로 FDA의 의료기기 승인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23앤드미는 경쟁사들처럼 DTC 서비스 방식을 포기하고 병원을 통해 판매하거나, 새롭게 FDA 승인을 받을 때까지 서비스를 중단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결국 23앤드미는 일반 특징 검사 및 조상 분석을 제외한 질병/약물 분석 서비스는 중단했다. 이후 유전 질병 인자 보유 검사는 다시 FDA 승인을 거쳐 작년 가을부터 DTC로 제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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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TC는 과연 위험할까

2013년 FDA가 질병이나 약물 유전자에 대한 DTC 분석 서비스를 제한하자, 미국의 전문가 사이에서도 이 규제가 필요하다는 쪽과 과도하다는 쪽으로 의견이 나뉘었다. 전자는 일반인이 유전자 분석 결과를 이해할 능력이 없다는 이유를 들었고, 후자는 일반인도 해당 분석의 한계와 위험을 인지하고 있으므로 실제로 위험도는 높지 않다고 지적한다.

필자는 후자의 의견에 동의하는 편이다. 이는 여러 연구 결과로도 뒷받침 되는데, 2009년 DTC 분석을 받은 3천명을 대상으로 스크립스 연구소에서 조사한 결과 불안감이나 심리적인 건강에 큰 영향이 없었으며, 2010년 존스홉킨스의 연구에 따르면 DTC 검사 이후 상당수의 사람들이 식습관(72%)이나 운동 습관(61%)을 바꾼 것에 비해, 의사와 상의 없이 처방약을 바꾼 환자는 전체의 1% 도 되지 않았다. 2013년 FDA의 금지를 받을 당시 23앤미에서 유전자를 분석한 50만 명에 달했으나 결과에 따라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등 부작용이 보고된 사례도 거의 없었다.

FDA2-2DTC 검사에 기반해 의사와 상담 없이 처방약을 바꾼 경우는 전체의 1% 미만이었다 (출처: 네이쳐)

 

내 유전 정보는 누구의 것인가

더구나 국내에서 이번에 DTC가 허용된 검사 항목은 너무도 제한적이기 때문에, 애초에 복지부가 천명했던 ‘질병 예방 목적’ 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또한 미국에서는 허용된 유전 질병 인자 보유 검사 등은 여전히 국내에서는 DTC가 불법이다. 앞서 의협의 대변인이 제기한 우려가 다소 과도해보이는 이유이다. 또한 일각에서 지적되어 오듯 국내에서만 높은 규제가 적용되면 소비자들이 외국에 유전자 검사를 의뢰하게 되어 국민의 유전 정보가 국외로 유출되는 부작용을 낳기도 한다.

하지만 아마도 더 중요한 것은 나의 DNA 정보가 누구의 것이며, 내가 나의 DNA에 대한 권한과 책임을 온전히 가질 수 있는지에 대한 보다 근본적인 질문에 대한 답이다. 23앤드미가 의료기관을 거치지 않고 아직까지도 끝끝내 DTC 방식을 고집하는 것도 개인 고객에게 자신의 유전정보에 대한 온전한 소유권을 주겠다는 철학 때문이다.

최근 국내 DTC 유전자 검사의 제한적 허용은 그 범위에서 다소 아쉽기는 하지만, 세계적인 흐름에 발을 맞추려는 시도라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향후 관련된 위험 요소 등을 잘 고려하여 규제가 긍정적인 방향으로 개선되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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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out The Author

디지털 헬스케어를 통해 의료를 혁신하고 세상을 더 건강하게 만들고자 하는 벤처투자자, 미래의료학자, 에반젤리스트입니다. 포항공대에서 컴퓨터공학과 생명과학을 복수 전공하였고, 동대학원에서 전산생물학으로 이학박사를 취득했습니다. 스탠퍼드 대학, 서울대학교병원 등에서 연구하였습니다. 현재 디지털 헬스케어 스타트업 전문 투자사, 디지털 헬스케어 파트너스 (DHP)를 2016년에 공동창업하였고, 대표를 맡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40여 개의 디지털 헬스케어 스타트업에 투자하였습니다. 네이처의 디지털 헬스케어 분야 자매지 『npj 디지털 메디슨』의 편집위원이자, 식약처, 심평원의 전문가 협의체 자문위원입니다. 『디지털 헬스케어: 의료의 미래』 『의료 인공지능』 『헬스케어 이노베이션』 등을 집필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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