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16일 코엑스에서 개최된 ‘인공지능 국제 심포지엄’ 에는 IBM Watson의 CTO (최고 기술 책임자)인 Rob High 가 초청되어 기조연설을 하였습니다. 불과 며칠 전 구글의 알파고가 이세돌 9단과의 대결에서 선전하며 (특히 국내에서) 인공지능이 초미의 관심사가 되었던 것과 관련하여 미묘한(?) 시기에 Rob High 가 한국을 방문한 것입니다. Rob High 는 1981년에 입사한 이후, 지금까지 무려 34년을 IBM에서 근무한 인지 컴퓨팅 전문가입니다.
IBM은 딥블루를 개발하여 이미 체스 챔피언과 대결하면서 승리했고, Watson 은 2011년 Jeopardy!에 출전하여 퀴즈 챔피언에게 승리를 거두는 등 그동안 인공지능의 대명사였습니다. 제 블로그의 독자들은 잘 아시다시피, Watson은 일찍이 암 환자 진료 등 의료 분야에 활발하게 진출하고 있습니다.
- 관련 포스팅
한국 IBM에서는 Rob High 가 기조연설을 마친 이후에 한국의 인공지능 관련 전문가들과 오찬을 함께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해주었습니다. 여러 훌륭하신 선생님들과 함께 부족한 저도 초청해주셔서, 감사한 마음으로 식사를 함께 하면서 그동안 궁금했던 점들을 직접 물어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식사는 한 시간 좀 넘게 진행되었는데, 여러 교수님들께서 (헬스케어 이외의 분야에 대해서도) 질문을 많이 하셨고, 그 와중에 저도 띄엄띄엄 여쭤본 내용입니다. 제 부족한 영어 실력과 기억에 의존해서 쓰는 내용임을 감안하시고 읽어주시기 바랍니다. 각 질문에 대한 제 생각은 아래에 따로 서술하여 놓았습니다.
– 뉴욕 MSK 암센터와 MD 앤더슨에서 Watson이 암 환자 진단에 활용된지 3여 년의 세월이 흘렀다. 혹시 Watson 을 활용하는 것이 환자들의 치료 효과나 의사들의 진료 효율, 비용 감소 등에 효과가 있다는 근거가 나왔는가?
아직까지는 적용된 기간이 충분하지 않기 때문에 근거는 제한적이다. 근거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아직 시간이 더 걸릴 것으로 생각한다.
(제 생각: 일부 국내 언론에서 Watson 의 암 진단 정확도가 90% 이상이니, 자궁경부암을 100% 진단했느니 하는 내용이 기사에 나옵니다만, 이는 MSKCC 등의 preliminary한 연구 결과 등을 잘못 해석한 것으로 보입니다. 아직 Watson의 임상 적용이 대규모 환자에 대한 장기적인 치료효과, 임상적 효용 등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근거는 아직 나오지 않은 것 같습니다.)
– 이 두 병원에서는 얼마나 많은 의사들이 Watson 을 실제 진료에 활용하고 있는가?
전체 의사로 비율을 따지면 아직 사용하는 의사의 수는 많지 않은 편이다. 하지만 MSK 암센터와 MD앤더슨에서 개발된 Watson Oncology 는 향후 미국의 병원들의 민주화(democratize)하는데 도움을 줄 것으로 생각한다.
– 여기서 민주화라는 말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미국의 암환자들은 처음에 발병했을 때 지역에 있는 1차 병원에 간다. 암이 진행되면 주(state)에 있는 2차 병원에 가며, 더 나아가 3차 병원인 MSK 암센터, MD 앤더슨까지 오는 환자들은 가장 상태가 심각한 환자들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병원들의 의사들은 그동안 심각하거나 특이한 케이스에 대해서 1, 2차 병원에 비해 많은 경험과 전문성을 쌓아 놓았다. 이런 3차 병원에서 의사들과 함께 개발한 Watson 을 향후 1, 2차 병원에서도 사용함으로써 그들도 MSK 암센터나 MD 앤더슨 의사들의 ‘두뇌 (brain)’ 과 함께 진료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지역의 환자들도 암이 진행되기 이전부터 더 전문적인 진료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이는 의학의 전문성의 민주화라고 볼 수 있다.
(제 생각: 1-3차 병원의 의료 체계가 사실상 작동하지 않는 국내 의료 환경에서는 이런 민주화에 대한 1차병원의 니즈는 차이가 있을 것 같습니다. 환자들이 암에 걸리면 1, 2차 병원이 아니라, 바로 3차 병원으로 가기 때문입니다. 다만 3차 병원들 중 소위 Big5 외의 병원들은 이러한 MSKCC나 MD앤더슨의 ‘두뇌’를 곁에 두고 진료한다는 것이, 다른 병원에 비해 내세울 수 있는 차별성이 될 수는 있을 것 같습니다)
– 내 주변의 많은 의사들이 Watson이 실수하는 경우에 대해서 걱정을 한다. Watson이 실수를 한다면 그것은 누구의 책임이 될 것인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Watson의 목적이 인간의 인지 능력을 강화(augment)시키는 것이지, 결코 인간을 대체하거나 의사 결정 과정에서 인간을 배제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의사는 Watson과 함께 의사결정을 할 수 있을 것이며, 의사의 의사 결정 과정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정보들, 혹은 간과하기 쉬운 정보들을 제공하는 역할을 할 수 있다. 또한 의료 데이터에는 많은 오류들이 포함되어 있으며, Watson은 그런 오류들을 지적하는 역할을 할 수 있다.
– 결국 Watson도 일종의 CDSS (Clinical Decision Support System)의 일종으로 볼 수 있는가?
그렇다.
– 그래도 Watson이나 IBM이 잘못된 진단으로 고소를 당할 위험은 있지 않은가?
Watson은 치료 결정을 내린다기보다는 의사에게 가능한 치료 권고안(recommendation)을 제공하는 것이다. 또한 대부분의 경우 단 하나의 권고안보다는 여러 가지의 가능한 권고안들을 제공하게 된다. 각각의 권고안은 근거와 레퍼런스를 지니고 있으며, 이런 권고를 내리는 논리, 근거와 출처는 투명하게 드러나게 된다.
(제 생각: 제가 주변의 몇몇 규제 전문가, 변호사 분들께 여쭤본 결과 이렇게 권고안을 점수와 함께 여러 개 주는 경우라고 할지라도 Watson 은 국내 규제 하에서는 의료기기로 분류될 가능성이 높아보입니다. 신의료기술과 보험급여 여부도 향후 판단이 필요할 것으로 보입니다. 특히, 의사가 Watson의 버튼을 눌러서 치료법 권고안을 보거나, 유전체 분석을 하는 등의 과정을 ‘의료 행위’로 볼 것인지도 애매한 부분입니다)
– 현재 MSK 암센터의 연구에서는 환자와 의사 모두 Watson의 권고안을 볼 수 있는가? 아니면 의사만 보는가?
지금은 의사만 확인한다.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의사와 환자가 모두 진료실에 앉아서 Watson의 권고안을 보면서 치료 방법을 논의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어차피 지금도 환자들은 인터넷으로 자신의 병에 관해서 찾아보고 병원을 찾지만, 정확하지 않거나 관계 없는 레퍼런스를 찾아보고 온 경우도 많다. 의사들은 Watson을 함께 보면서 환자에게 올바른 레퍼런스를 제시할 수도 있을 것이다.
(제 생각: 향후 Watson 등의 인공지능을 진료실에서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에 대한 가이드라인도 필요할 것입니다. 예를 들어, 의사와 Watson 의 권고안이 다르게 나온다면, 어떤 치료법을 누가 선택할 것이며, 그 결과에 대한 책임을 누가 질지도 문제가 될 것입니다. 진료 전 프리뷰를 할 때 의사가 Watson의 권고안을 참고한 후 진료에서는 의사가 결론만 환자에게 이야기하는 것과, 의사가 환자와 함께 앉아서 Watson의 권고안을 검토하는 것은 이런 면에서 크게 차이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측면에서, 향후 인공지능을 진료에 어떻게 활용할지에 대한 가이드라인이 필요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1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