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웨어러블 디바이스 중에서 가장 대중적인 것은 손목에 착용하는 스마트 밴드 형태입니다. 스마트 밴드 중에서도 가장 대표적인 기능이 Fibit 과 같은 보행수 기준의 활동량 측정계입니다. 하지만 이 활동량 측정계의 효용성에 대해서는 여전히 의문이 많습니다. 보행수 측정이 건강 관리 측면에서 사용자에게 어떠한 도움을 주는지, 그 데이터를 사용자가 어떻게 해석하고 활용하면 건강을 증진시킬 수 있는지가 명확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번 포스팅에서 소개할 웨어러블 디바이스는 그러한 면에서 조금 다릅니다. Empatica라는 보스턴에 있는 스타트업이 출시한 Embrace 라는 스마트 밴드는 뇌전증(간질) 환자의 발작을 측정하기 때문입니다. 사용자의 움직임 뿐만 아니라, 피부 전기활동(EDA: electrodermal activity)이라는 지표를 이용해서 말입니다.
사실 이 포스팅은 제가 최근에 쓴, 지난 10월 샌디에고 학회의 발표에서 영감을 받은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단순히 후기로 쓰기에는 중요한 내용이라 별도의 포스팅으로 다룹니다.
간질을 측정하는 웨어러블 디바이스
제가 샌디에고 학회에서 가장 인상 깊게 들었던 발표가 바로 MIT Media Lab의 Rosalind W. Picard 교수님의 발표였습니다. 피부 전기활동(EDA) 지표를 통해 스트레스 레벨을 측정하고 뇌전증의 발작을 측정한다는 웨어러블 디바이스 Empatica가 있다는 것은 원래 알고 있긴 했습니다. 또한 감정을 분석하는 기술과 이 기술을 사업적으로 활용하려는 Affectiva라는 회사에 대해서 올해 초 New Yorker 기사에서 재미있게 본적이 있었습니다.
알고보니 모두 이 Rosalind W. Picard 교수님께서 주도하시고 있는 일들이었습니다. Picard 교수님은 소위 감정 컴퓨팅 (Affective Computing)이라는 분야를 선구적으로 개척하고 있는 분입니다. 이 감정 컴퓨팅은 감정과 관련된 전산학적 기술을 연구하는 분야라고 할 수 있습니다.
Empatica 에서 만든 스마트 밴드 Embrace는 특이하게도 피부 전기활동 (EDA: electrodermal activity) 수치를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합니다. 이 EDA는 땀의 배출 등에 따라 피부의 전기저항의 변화와 전위의 변화 등을 나타내는 수치입니다. 단순히 보행수를 위주로 측정하는 Fitbit 등의 여타 스마트 밴드와는 다른 부분입니다.
Picard 교수님에 따르면, 피부는 모든 신체 장기들 중에 유일하게 교감신경의 활성화에만 영향을 받고, 부교감신경에는 영향을 받지 않는 부위라고 합니다. 우리가 예전 교과서에서 배웠듯이 우리의 자율신경계는 교감신경와 부교감신경으로 이루어집니다. 교감신경은 우리가 흥분하거나, 물리적/감정적 스트레스를 받을 때 활성화됩니다. 반대로 부교감신경의 활성화는 우리 신체가 편안하고 긴장이 풀어질 때 활성화됩니다.
따라서 EDA를 측정하면 교감신경의 활성화, 즉 스트레스 레벨을 측정할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피부 전기 활동성 수치는 거짓말 탐지기에도 빠지지 않고 측정되는 수치이기도 합니다. 흔히 스트레스 레벨을 측정하기 위해서는 심박변이도 (HRV: Heart Rate Variability)를 이용합니다만 (삼성 갤럭시 스마트폰의 스트레스 측정도 HRV를 활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HRV는 교감신경과 부교감신경의 활성화에 모두 영향을 받을 수 있다고 합니다.
Picard 교수님의 초기 연구는 EDA를 활용하여 주로 자폐아들의 감정을 파악하기 위한 것이 목적이었습니다. 자폐아들의 경우 일상적인 의사소통이 어렵기 때문에 어떠한 조건에서 스트레스를 받고 melt down이 일어나는지를 알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EDA 수치를 분석하면 말 못하는 자폐아들의 감정도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Embrace를 이용하면 스마트폰으로 EDA 등의 수치를 실시간으로 볼 수 있습니다
우연히 발견한 발작 측정 가능성
하지만 재미있게도 아주 우연한 사건을 계기로 EDA가 스트레스 레벨 뿐만 아니라, 간질 환자들이 발작을 하는 것을 측정할 수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한 대학원생이 Picard 교수님께 크리스마스 연휴 기간 동안 연구실에 있던 이 기기를 빌려가겠다고 요청을 했습니다. 그 학생의 친동생이 자폐아였기 때문에 의사소통이 어려운 동생의 감정 변화를 이해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기간 동안 이상한 일이 벌어집니다. Picard 교수님이 기기가 고장났다고 생각할 정도로 몇번에 걸쳐 EDA 수치가 크게 상승한 것입니다. 이상하게 생각한 교수님이 연휴기간임에도 학생한테 전화까지 걸어서 ‘그 때 무슨 일이 있었냐? 기계가 고장난 것은 아니냐?’ 고 물어봤다고 합니다.
학생이 일기장까지 뒤져본 결과 놀랍게도 그 당시에 동생이 발작(seizure)을 했다는 것입니다. 뇌전증 (간질)은 뇌의 신경세포들이 과도하게 흥분하면서 발작을 일으키게 됩니다. 그러한 신경세포의 이상 활성화가 EDA 수치의 큰 변화로 나타나게 된 것입니다.
그 이후 Picard 교수 팀은 연구를 통해서 이 EDA 센서를 통해 뇌전증(간질) 환자에게 전신 발작(generalized tonic-colonic seizure)이 일어나는 것을 94% 의 정확도로 탐지할 수 있다는 것을 밝혀냈습니다 (Epilepsia 2012). EDA와 팔목의 움직임에서 매 10초마다 측정한 19개의 feature를 기계학습 알고리즘의 일종인 SVM (Support Vector Machine)으로 분석하여 총 80명의 환자들에 대해서 모니터링한 결과 총 16번의 전신발작 중 15번의 측정에 성공한 것입니다.
총 4,213 여시간을 모니터링하였고, 잘못 울린 알람은 24시간 당 0.74번 정도였습니다. 잘못 알람이 울린 경우는 4명의 환자에게 집중되어 있는데, 흥미롭게도 이 오류 알람은 피험자가 손을 빠르고 리드미컬하게 움직일 때 울리는 경우가 많았다고 합니다. 예를 들어, 주사위를 흔들거나, 손바닥을 계속 뒤집는 행동을 하거나 (실험 참가자 중 몇명은 자폐 스펙트럼 장애 환자였습니다. 뇌전증 발병률은 소아의 1% 미만이지만, 자폐증 환자 중에는 35%가 뇌전증을 가지고 있습니다), 저글링을 하거나, 닌텐도 위를 하는 경우 등이었습니다.
또한, 이 센서가 놓친 한 번의 전신발작은 아주 마일드한 발작이어서 EDA 수치가 많이 변화하지 않았다고 언급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점을 고려했을 때 EDA 수치를 통해서 사용자가 발작하는지 여부를 매우 정확하게 알 수 있다고 하겠습니다. 이 연구에서는 Embrace가 아니라 당시 Picard 교수 팀이 개발한 초기 웨어러블인 Q 센서를 활용한 것으로 보여집니다. (Q sensor (2009) – E1 – E2 – E3 – E4 (2014) – Embrace (2015) 의 순으로 업그레이드)
환자의 삶을 바꿀 수 있는 발작 측정
특히 Picard 교수팀은 EDA가 간질 환자들이 예기치 못하게 수면 중 갑자기 목숨을 잃는 SUDEP (Sudden Unexpected Death in Epilepsy)를 막기 위해서도 중요한 바이오마커가 될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SUDEP 이 일어나는 경우, 뇌파(EEG)가 억제되는 PGES (Post-ictal generalized EEG suppression) 현상이 100% 발생하며, 이 PGES는 손목으로 측정한 EDA 수치와 상관관계가 높다고 합니다. 따라서, SUDEP 과 EDA 수치는 (간접적이기는 하나) 관련이 있다고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사실 제가 발표를 들으면서 이해한 바로는 E4와 Embrace 밴드를 통해서 간질 발작을 ‘예측’ 할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만 (저와 발표를 함께 들은 다른 교수님께서도 이렇게 이해), 관련 논문 등을 찾아보니 아직 예측 보다는 현재 발작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알려주는 수준으로 봐야하겠습니다. 다만, Picard 교수의 발표들을 보면 예의 그 대학원생의 동생이 발작했을 때에는 EDA 수치가 발작에 몇분 정도 앞서 뛰었다고 언급하고 있기는 합니다.
만약 발작을 조금이라도 미리 예측할 수 있으면 뇌전증 (간질) 환자들의 인생을 완전히 바꿀 수 있을 것입니다. 발작이 예상되는 경우 약을 미리 먹거나, 안전한 자세를 미리 취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뇌전증 환자들은 사회적으로 낙인이 찍힌 채 살아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평소에는 정상적이던 사람이 급격하게 이상 증세를 보이기 때문에 과거 중세 사회에서는 악마에 씌였다고 해서 환자들을 가둬놓기도 했던 병입니다. 사실 지난 2011년, 국내에서는 이 질병의 명칭이 ‘뇌전증‘ 으로 바뀐 것도, ‘간질’이라는 용어가 주는 사회적인 편견이나 부정적 뉘앙스 때문입니다. 환자가 1년에 한 두 번만 발작을 하더라도 언제 발작을 할지 모르기 때문에 운전도 하지 못하고, 취직이나 보험 가입에도 어려움이 있습니다. 만약 발작을 미리 예측할 수 있다면, 환자들의 삶의 질이 크게 향상될 것입니다.
하지만 예측까지는 아니더라도, 발작이 현재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측정하는 것만으로도 큰 의미가 있습니다. 보호자에게 환자가 발작을 하고 있다는 경고 사인을 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는 환자가 혼자 살거나, 의사소통이 어려운 어린 아이일 경우에 특히 의미가 있습니다. 발작을 오래하면 심각한 뇌손상을 입거나 목숨을 잃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tonic-colonic seizure의 경우) 의식을 잃고 발작을 겪을 때 자세가 좋지 않아 부상을 입거나, 구토 등으로 기도가 막히게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 때 조속히 보호자가 환자의 상태를 파악하게 되면 여러 조치를 취할 수도 있습니다.
또한, 뇌전증 환자의 발작을 정량적이고 객관적으로 측정할 수 있다는 점도 중요합니다. 뇌전증의 경우 발작의 빈도와 지속 시간이 중요한 척도입니다. 하지만 현재는 이 수치를 보호자가 곁에서 경련하는 횟수를 직접 눈으로 보면서 숫자를 세며 측정합니다. 이는 정확하지 않을 수도 있으며, 보호자가 곁에 없어서 놓치는 경우도 있습니다. 또한, 일부 유형의 발작의 경우, 증상이 겉으로 드러나지 않기 때문에 보호자나 환자 본인도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 (비디오와 EEG 모니터링으로 측정되는 발작의 절반 정도를 환자들이 자각하지 못한다고 합니다). 하지만 웨어러블 기기가 정확한 경우 이러한 척도를 더 정확하게 측정할 수도 있습니다.
더 나아가서 이러한 기기는 뇌전증 신약을 개발할 때에도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보통 뇌전증의 경우 흥분성 신경세포를 억제하거나, 억제성 신경 전달을 강화시키는 등의 항경련제를 복용하게 됩니다. 이 약의 효과 여부를 판단하는 기준이 발작의 빈도와 지속 시간이 얼마나 줄어드는가 하는 것이며, 제약사는 이러한 기준을 정량적이고 객관적으로 파악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아직까지는 제약사에서 뇌전증 신약 개발을 위해 이러한 웨어러블 기기를 사용한다는 보고는 없지만, 향후 충분히 고려할 수 있는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Empatica 는 어린 뇌전증 환자들을 돕기도 합니다. 뇌전증 환자 협회와도 긴밀하게 협력하고 있으며, 크라우드 펀딩을 통해서 Embrace 를 하나를 구매하게 되면, 어린 뇌전증 환자 한 명에게 이 Embrace가 기부됩니다. 이미 1500개 이상의 Embrace가 기부되었다고 합니다.
샌디에고 학회에서 Picard 교수님의 이 발표 이후에 청중들의 반응은 정말 뜨거웠습니다. (저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어서 앞다투어 질문을 던지며 큰 관심을 보였습니다.
최근에 웨어러블 디바이스들이 홍수를 이루면서 단순히 보행수에 기반한 활동량 측정만으로는 경쟁력을 가지기 어렵게 되었습니다. 많은 기기들이 독특한 바이오메트릭을 측정하고, 이를 기반으로 사용자에게 직접적인 가치를 줄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고 있습니다. 이번 포스팅에서 소개한 Empatica 의 Embrace가 그러한 대표적인 사례로 볼 수 있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