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의 습격이 시작되고 있다. 곧 개봉할 영화 ‘터미네이터’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에게 닥치고 있는 실제 상황이다. 현재 인류는 유사 이래 처음으로 인공지능이 실생활과 비즈니스에 활용되기 시작한 시대에 살고 있다. 이러한 인공지능의 영향은 갈수록 더 커질 것이다. 이미 인간은 기계와 경쟁을 시작했으며, 그 경쟁에서 패배한 사람들은 일자리를 잃어가고 있다. 이러한 경쟁에 직면하게 되는 대표적인 직종이 바로 의사이다. 불편한 진실이다. 이제는 이러한 현실에 대비를 시작할 때이다.
제 2의 기계 시대: 인공지능
인류가 이룩해온 산업의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발명품 중의 하나는 증기 기관이다. 증기 기관의 발명에 따라 인류는 노동에서 근육의 한계를 넘어서게 되었고, 그 결과 공장, 대량생산, 철도와 대중교통을 탄생시켰다. 이는 현대 생활 그 자체를 만들어내는 원동력이었다. 하지만 그 결과 모두가 행복해진 것은 아니었다. 자신의 근육을 사용하여 일하던 많은 블루칼러 노동자들은 증기 기관 때문에 일자리를 잃었던 것이다. 한동안 러다이트 운동을 비롯한 기계 파괴운동으로 그들은 저항했지만, 이 흐름을 거스를 수는 없었다.
현재 인류는 소위 ‘제2의 기계 시대’로 불리는 또 한 번의 변혁을 맞이하고 있다. 이번에는 증기기관이 아닌 인공지능의 발전 때문이다. 증기 기관이 근육의 한계를 넘어서게 했다면, 인공지능은 인류로 하여금 두뇌의 한계를 넘어서게 한다. 이번에 기술적 실직 (technological unemployment)의 희생양이 되는 것은 다름 아닌 화이트칼라, 혹은 지식 근로자들이다.
일부 블루칼라는 기계의 도입을 막기 위하여 게릴라 활동을 통해 기계를 파괴하는
러다이트 운동을 진행하였으나, 결국 그 흐름을 거스를 수는 없었다.
지식근로자들의 기술적 실직
지식근로자들의 기술적 실직은 이미 벌어지고 있는 현실이다. 로봇은 이제 인간의 도움 없이도 신문 기사를 작성하고 있다. AP 통신 등은 이미 이러한 시스템을 이용하여 기사를 내보내고 있으며, 이 시스템은 초당 2천 개에 달하는 기사의 작성이 가능하다. 기자들은 자신의 역할을 고민해야 할 때다.
변호사도 마찬가지다. 기존에 대형 소송을 위해서는 서류 검토를 위해 수백 명의 변호사가 강당을 가득 채우고서 밤을 새우곤 했다. 하지만 이제는 컴퓨터가 관련 서류를 미리 읽고 필요한 자료들을 선별하여 주므로, 그 강당을 채운 변호사들은 다른 업무를 찾아야 했다.
니콜라스 카가 저서 ‘유리감옥’ 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비행기의 조종실은 자동화에 따른 기술적 실업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공간이다. 1940년대에는 비행기 운항을 위해 조종사를 포함한 5명의 전문가가 필요했다. 비행기 조종이 자동화되면서 이 숫자는 서서히 줄어들어 지금은 두 명의 조종사만이 조종실을 지키고 있으며, 이제는 이마저도 너무 많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전체 비행 과정 중에 인간 조종사가 실제로 조종간을 잡는 시간은 이제 이착륙 시의 단 3분에 지나지 않는다.
‘닥터 왓슨’의 진격
인공지능의 대표적인 활용 분야는 다름아닌 의료 분야이다. 미국의 유명 퀴즈쇼 제퍼디! 에서 인간 챔피언들을 물리치며 유명세를 얻은 IBM의 인공지능 왓슨은 이미 재무, 여행, 요리 등의 다양한 분야에도 적용되고 있다. 그러나 역시 가장 활발하게 적용되는 분야는 헬스케어 및 의료 분야이다.
왓슨은 이미 2013년부터 뉴욕의 메모리얼 슬론 케터링 암 센터에서 폐암 환자 진단을 받기 위한 트레이닝을 받기 시작했다. 이어서 MD 앤더슨, 클리블랜드 클리닉, 메이요 클리닉 등 세계 유수의 병원들은 저마다 왓슨을 채택하기 시작했다. 왓슨은 의사를 도와서 EMR의 데이터를 분석하여 진료 전 환자 프리뷰를 돕고, 의학적 근거에 기반하여 환자에게 최적의 치료법을 권고하며, 등록 가능한 임상 시험을 선별하여주며, 게놈 데이터를 분석하여 발병 원인 변이를 찾아준다. 특히, 지난 6월 ASCO에서 MD앤더슨 연구자들에 따르면, 백혈병 환자 200명을 대상으로 왓슨의 권고한 표준 치료법은 MD앤더슨의 인간 의사의 결정과 80% 이상 일치했다.
‘닥터 왓슨’은 이제 세계로 퍼져나가고 있다. 지난 10월 태국의 선도 병원인 범룽랏 국제 병원은 IBM과 메모리얼 슬론 케터링 암 센터가 공동 개발한 왓슨 온콜로지 (Watson Oncology) 를 채택하겠다고 전격 발표했다. 이는 미국 이외의 병원에서 왓슨이 채택된 최초의 사례이다. 블룸그라드의 최고 의료정보 책임자인 제임스 마이저 박사는 왓슨에 대해 “환자의 현재 정보를 리뷰할 수 있는 유능하고 박식한 동료를 가진 것과 같다”며, “왓슨은 신속하고, 포괄적이며, 현재 내가 치료하는 개별 환자에게 의학적 근거들이 어떻게 적용될지 이해하는 것에 뛰어나다” 고 언급했다.
클라우드 기반의 왓슨 솔루션은 통신망만 있다면 이제는 전세계 어디에서나 쉽게 접근할 수 있다. 지난 3월 중순 한국 IBM에도 왓슨 사업부가 신설되었다. 들리는 이야기에 따르면, 국내 대형 병원들 중에도 왓슨을 도입하는 것을 진지하게 고려하는 곳이 적지 않다고 한다.
왓슨은 제퍼디! 퀴즈쇼에서 전설적인 인간 챔피언 2명을 무참히 무찔렀다
디지털 병리학자
“인공지능은 인간의 지능을 정말 능가할 수 있을까?” 사실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것은 이제 의미가 없다. 왜냐하면 일부 분야에서 이미 인공지능은 인간보다 나은 판단 능력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몇년 전부터 딥 러닝 (deep learning) 이라는 기계 학습의 한 분야를 활용하여 구글, 페이스북, 알리바바 등은 사람의 얼굴을 인식하는 인공지능을 앞다투어 개발하고 있다. 이 알고리즘들은 이미 인간이 사람의 얼굴을 인지하는 정확도를 더 넘어섰다. 일반적으로 사람의 정확도는 95% 정도인데 반해, 페이스북의 ‘딥 페이스 (DeepFace)‘, 구글의 ‘페이스 넷 (FaceNet)’ 은 각각 97.35%, 99.63% 의 정확도를 보여준다.
이러한 인공지능의 이미지 분석 능력은 고스란히 영상의료 데이터나 병리학적인 판단을 위해서 사용될 수 있다. 이른바 ‘디지털 병리학자 (Digital Pathologist)’의 등장이다. 인간 병리학자는 본인의 눈과 슬라이드, 현미경에 기반하여 판독한다. 네이쳐에서도 지적된 바 있듯이, 문제는 병리학자들 간의 숙련도와 역량에 따라 판독 결과가 일치하지 않는 경우도 있고, 애매한 샘플의 경우에는 동일한 샘플을 같은 병리학자가 보더라도 판독이 달라지기도 한다는 것이다.
인공지능을 도입하면 이러한 인간의 부정확성과 주관, 개인차를 보완할 수 있지 않을까? 지난 2011년 하버드 메디컬 스쿨의 병리학자 앤드류 백 (Andrew Beck)은 “C-Path (Computational Pathologist)” 라는 툴을 개발했다. C-Path는 유방암 생검 샘플에 대해서 6,642 가지의 기준(feature)을 바탕으로 암의 병기 판단과 예후를 성공적으로 판독했다. 이러한 사례는 현재 시도되고 있는 디지털 기술의 의료 접목에 아주 일부분에 불과하다.
의사의 역할은 어떻게 변화할 것인가
무서운 사실은 이러한 IT 기술은 기하급수적으로 발전한다는 것이다. 무어의 법칙에 따르면 18개월마다 CPU, 메모리 등의 성능은 두 배씩 좋아진다. 수십년 전 부터 이 법칙은 지켜져 왔으며, 앞으로도 지켜질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즉, 15년 정도가 지나면, IT 기술은 지금보다 1,000 배가, 30년이 지나면 약 10만배 (=2^20) 좋아진다. 왓슨과 같은 인공지능은 그 때가 되면 얼마나 발전해 있을지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다.
의사들은 이제 인공지능의 영향을 받을지의 여부가 아니라, 언제 받게 될지가 문제이다. 비노드 코슬라의 말처럼 ‘80%의 의사가 알고리즘으로 대체‘ 되지 않을지는 몰라도, 의료 행위에 필요한 인간 의사의 수는 앞서 언급한 변호사나 파일럿의 사례처럼 줄어들 수 있다.
특히, 현재 의과대학에 재학 중인 예비 의사들이나, 수련을 받고 있는 젊은 의사들은 은퇴 전에 이러한 인공 지능의 영향을 받게 될 가능성이 높다. 비노드 코슬라는 2025년이면 일상적인 의료 환경에서도 큰 변화가 생길 것으로 예상했다.
이제는 인공지능이 의사와 의료계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 논의하고 대비책을 세우는 것이 필요한 시점이 다가오고 있다. 무엇보다 인공지능에 따라 의사의 역할이 향후 어떻게 변화할 것인지에 대해서 논의해야 한다. 현재 의사가 맡고 있는 많은 역할 중에서 어떤 것이 인공지능에 의해서 자동화될 것인지, 그리고 어떠한 부분은 마지막까지 인간의 역할로 남을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기본적으로 직관에 의한 의사 결정이 아니라, 정량적이고 객관적인 데이터나 근거에 기반하여, 논리적이고 단계적으로 내려지는 의사 결정 과정은 원칙적으로 알고리즘화가 가능하다. 이러한 기준에 맞춰서 자신의 전문 분야나 역할 중에 자동화 되지 않을 부분을 골라내는 것이 중요하다.
각 전공마다 인공지능에 의해 대체 가능한 부분이 많을 수도 혹은 적을 수도 있다. 사실 혈액종양내과는 MSKCC (폐암), MD앤더슨 (백혈병), 메이요 클리닉 (항암제 임상시험), 클리블랜드 클리닉 (암 유전체 분석)의 사례에서 보듯이 이미 이러한 영향을 받기 시작했다. 영상의학과도 이미 영향을 받고 있다. 앞서 언급한 C-Path 의 사례와 같이 영상의학과와 병리과도 이미 영향을 받고 있다.
반면 에릭 브린욜프슨 MIT 교수가 ‘제 2의 기계 시대‘ 에서 언급한 바를 바탕으로 생각해보면, 술기가 중요한 외과나 인간 사이의 커뮤니케이션이 중요한 정신과 등은 상대적으로 늦게 영향을 받을 것이다.
의학 교육도 바뀌어야 한다
‘기계적인 역할’ 을 기계가 맡게 되었을 때 인간 의사에게 강조될 역할은 무엇일까? 현재 의사의 ‘역할’ 중 80% 가 기계에 의해 자동화된다면, 남게 될 20%의 역할은 과연 무엇일까? 이 질문에 대한 답에 따라서 현재의 의과대학 교육 커리큘럼이나 평가 방법, 전공의 수련 체계도 바뀌어야 한다.
일단 의학 교육에서 단순 암기에 대한 중요성은 덜 강조되어야 할 것이다. 암기는 컴퓨터가 훨씬 더 잘 하기 때문이다. 왓슨은 지금도 인간의 언어 (자연어) 를 읽고 이해할 수 있으며, 이는 의학 교과서나 논문을 눈 깜짝할 사이에 읽고 기억할 수 있다는 말이 된다.
반면 새로운 분야에 대한 연구나, 창의성을 길러주는 교육, 그리고 인간대 인간으로서 환자를 대할 수 있도록 하는 인문학적, 커뮤니케이션 역량 등이 더욱 강조되어야 할 것이다. 인공지능이 활용된다는 점은 기술적인 측면에서의 의사들 사이에서는 상향 평준화가 일어난다는 의미로도 해석될 수 있다. 그렇다면 우수한 의사를 판가름하는 기준은 기술적인 측면 이외의 인간적이고 소프트한 부분에서 판가름 날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의사 출신 언론인 박재영 주간이 저서 ‘개념의료‘ 에서 지적했던 바와 같이, 현재의 의과대학 교육과정은 이러한 역량의 증진을 목표로 하지 않고 있다. “의사 소통과 팀워크의 기술을 가르쳐 준 수업은 단 한 시간도 없었다. 이것이야말로 내가 매일 절실히 필요로 하는 기술인데도 말이다.” 존스홉킨스의 피터 프로노보스트 교수의 고백이다.
또한 컴퓨터를 활용할 수 있는 교육도 필요하다. 인공지능의 기초 원리를 알지 못하고서는 이를 활용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최근 하버드 의과대학이 바이오메디컬 인포매틱스 학과를 정식 런칭한다는 소식은 의미심장하게 느껴진다. (바이오인포매틱스 분야에서 활용되는 주요 기법 중의 하나가 머신 러닝이다)
더 나아가서는 인공지능을 활용하여 환자를 진료하는 과정 자체를 배워야 할 것이다. 어차피 수련을 끝낸 뒤에 의료 현장에서 인공지능을 활용해야 한다면, 그것 자체를 수련 과정 중에 배우는 것이 더 좋은 의사를 배출하기 위한 방법일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제 기계와 함께 달리는 법을 배워야 한다.
Watson을 사용하고 있는 MD 앤더슨 의사의 모습 (출처: IBM)
이제는 대비가 필요하다
제퍼디! 퀴즈쇼에서 전설의 74연승을 거두며 일약 스타덤에 올랐던, 퀴즈 챔피언 켄 제닝스는 왓슨에게 패배한 후, “우리는 생각하는 기계에 의해 일자리를 잃은 최초의 지식근로자로 기록될 것이다. 그리고 나는 (이러한 실직을 겪는) 마지막 사람이 아닐 것으로 확신한다” 고 언급했다. 결코 흘려 듣지 말아야 할 이야기다.
인공지능은 더 이상 SF 영화 속 산물이 아닌, 이미 시작된 미래이다. 현재 한국 의료계에서는 원격진료니 하는 소모적인 논쟁으로 디지털 기술과 의료의 조화가 갈수록 늦어지고 있지만, 세계적으로 그보다 훨씬 전방위적이고 파괴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변화가 진행 중이다. 우리도 너무 늦기 전에 이러한 변화에 대비해야 할 때이다.
** 본 칼럼은 제가 ‘청년의사’에 기고한 글입니다. 분량 제한 때문에 기사에는 짧게 나간 글의 원본을 올려드립니다. 청년의사에 나간 칼럼은 여기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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