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nday 27th October 2024,
최윤섭의 디지털 헬스케어

집 앞 편의점을 원격 진료소로 만든다: HealthSpot

지난 3월 24일 일요일에 서울 코엑스에서 ‘Consumer Health Startups in Korea’ 라는 주제로 Health 2.0 Seoul Chapter첫번째 행사가 열렸습니다. 국내에서는 찾아보기 힘들었던 디지털 헬스케어에 대한 대규모 행사였기 때문에, 일요일 오전에 행사가 진행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분들이 참석하여 성황리에 막을 내렸습니다. 디지털 헬스케어에 대한 관련 업계 종사자들의 뜨거운 관심을 엿볼 수 있는 자리였습니다. (이 블로그에 방문자들 중에는 그 자리에 참석하셨던 분들도 많이 계실 것 같습니다.)

이 행사의 첫번째 발표를 해주신 분은 미래학자이시자, Health-IT 융합 전문가이신 명지병원의 정지훈 박사님이셨습니다. 20분간의 길지 않은 시간이 주어졌지만, 그 시간 동안 매우 통찰력이 넘치는 이야기들을 많이 전해주셨습니다. 그 중에서 저도 인상 깊게 들었고, 박사님 본인도 “라스베가스에서 열렸던 이번 CES 2013 행사에서 가장 충격적으로 보았던 것” 이라고 말씀하셨던 것이 바로 이 HealthSpot의 HealthSpot Care4Station 입니다.

MG_6210_edit-660x440 라스베가스에서 열린 CES 2013 에 전시된 HealthSpot의 Care4Station

이 HealthSpot의 컨셉은 어찌 보면 매우 간단합니다. TechCrunch 에서 이야기 하였듯이 ‘상자 속의 병원 (Hospital-In-A-Box)‘을 만드는 것입니다. 환자가 8-foot by 5-foot 크기의 작은 방 안에 들어가면 스크린을 통해 의사와 이야기 하면서 원격으로 진료를 받을 수 있고, 내부에 비치된 체온계, 피부분석기(dermascope ), 이청관(otoscope), 혈압계, 맥박 산소 측정기 (pulse oximeter), 그리고 블루투스 청진기 등을 통해 의사가 환자의 기본적인 상태를 진료할 수도 있습니다. 환자들은 의사의 지시에 따라 신체의 활력징후(vital sign) 을 측정하거나, 피부의 발진을 스캔하고, 청진기를 가슴에 대면서 진료를 받을 수 있습니다. 또한, 이 간이 진료소를 관리하기 위해 배치되어 있는 전문 간호사의 도움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아래의 그림 및 동영상을 참고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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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S 2013에서 전시된 Care4Station의 demo 동영상

재미 있는 점은 이러한 작은 ‘원격 진료소’ 혹은 ‘스테이션’이 배치될 수 있는 공간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주택가에 있는 GS25와 같은 편의점의 한 구석에 위치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이 스테이션을 ATM 기계 혹은 자판기 버전의 진료소라고 표현하기도 합니다. 이러한 시스템을 이용하면 환자들은 멀리 있는 병원에 직접 가서 오랜 시간 줄을 서서 기다릴 필요 없이, 스마트폰 앱 등으로 간편하게 예약을 한 다음, 간편하게 집 앞에 있는 편의점으로 가면 되는 것입니다.

집 대문 밖을 나가면, 편의점 뿐만이 아니라 각종 병원도 근처에 많이 찾아볼 수 있으며, 진료비가 비싸지 않은 한국에서는 굳이 이런 서비스가 필요 없을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아직은 국내의 의료법상 원격 진료는 불법입니다.) 하지만 의료 제도가 파탄에 이르고, GDP의 약 20% 가 의료비 지출에 쓰이는 미국에서는 이러한 시스템에 대한 관심이 매우 높습니다. 사기업에 의해 제공되는 의료 보험으로 인해, 자기가 가진 의료 보험의 수혜를 받을 수 있는 병원을 찾아야 하며, 진료비도 매우 높고, (지역에 따라) 병원의 수도 많지 않은 미국에서는 저렴하면서도 간편하고 빠르게 이용할 수 있고, 집 근처에 위치한 HealthSpot Station 같은 서비스가 주목을 받는 것입니다. (미국에서도 의사들이 자기가 면허를 가지고 있는 주 내에서만 원격진료를 하는 것이 합법이지만, 정치가들은 현재 의사들이 다른 주에서도 진료를 하는 것을 허용하도록 하는 법 제정을 추진하고 있다고 합니다)

Healthspot-Another

 

현재 어떻게 진행되고 있나?

Wired의 기사에 따르면 현재 이 서비스는 15가지 정도의 기본적인 증상 및 질병 (primary care conditions)에 대한 진료가 가능하다고 합니다. 여기에는 신체 통증, 피부 발진, 비뇨기 문제, 목 통증 등이 포함되며, 추후 정신 건강 전문의나 식품 영양사 등의 서비스로 확대될 계획이라고 합니다. HealthSpot은 이 간이 진료소를 캘리포니아와 중서부 지방에 소수의 시범 운영을 시작했으며, 2013년 1사분기 안으로 50개 정도를 더 시작할 계획이라고 합니다.

이러한 서비스를 실시하기 위해서는 일단 원격으로 환자들을 진료할 수 있는 의사들이 필요 합니다. HealthSpot은 원격진료 기업인 Teladoc 과 최근 전략적 제휴를 맺었습니다. Teladoc에 등록된 5 million 명의 원격진료에 훈련 받은 의사들의 리소스를 HealthSpot이 이용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또한 회사에 따르면, HealthSpot은 이 간의 진료소를 아웃렛 매장 등에 $10,000-15,000 에 세팅을 해주고, 운영비로 한달에 $950 의 요금 정도를 받을 예정입니다. 그리고 환자들은 진료를 받을 때마다 (병원에 가는 것 보다 상대적으로 저렴한) $60-80을 내게 될 것이라고 합니다. (응급처치(urgent care)에 대해서는 진료비를 더 받게 된다고도 합니다.).

 

편의점 내에 진료소가 위치한다.

최종적으로 회사는 이러한 진료소를 Walgreens와 같은 대형 편의점 체인에 두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한국의 편의점이나, 대형 마트, 수퍼마켓과는 달리 미국의 대형 소매업체인 Walgreens나 CVS 에는 일반약 뿐만이 아니라, 약사들이 있는 약국이 있으므로 (사실 CVS, Walgreens를 pharmacy 라고 부르기는 하지만, 스넥, 음료수, 화장품, 욕실용품 등등을 각종 생활용품을 다 팔기 때문에 한국의 대형 마트에 가까운 형태이지요) 이 곳에 HealthSpot Station을 둔다면 환자들이 원격으로 진료를 받은 후, 처방전을 바로 출력해서 옆에 위치한 약국에서 처방약을 바로 구매할 수 있는 형태가 될 것입니다.

약국을 갖추고 있는 대형 매장에서 세팅 금액 $10,000에 한달 동안 $950에 진료소를 운영할 수 있다면, 약국의 매출 증대 및 고객 편의 효과를 따졌을 때 결코 큰 금액을 아닐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다만 현재는 미국에서 주마다 원격 진료나 전자 처방전 (e-prescription)을 제공하는 것에 대한 보험규정이 다르기 때문에 규정을 검토하는 중이라고 합니다.

참고로, (조금 다른 이야기이긴 하지만) 비슷한 목적으로 CVS Pharmacy는 이미 매장 내에, 유명한 ‘미닛 클리닉 (MinuteClinic) 이라는 간이 진료소를 가지고 있습니다. 미닛클리닉에서는 ‘의사의 감독 없이도’ 전문 간호사가 (한국과 달리 미국에서는 전문 간호사가 간단한 1차 진료를 할 수 있게 되어 있습니다) 감기, 인후염, 기관지염, 앨러지, 무좀, 간단한 피부염증 등의 간단한 질병들에 대해 진료 및 처방을 내려 줍니다. 특히, 예약도 필요 없고, 주말 및 야간에도 진료를 하며, 무엇보다 가격이 저렴하고 대부분의 보험을 받는다는 큰 이점이 있다고 합니다. (참고: 타임지 기사) 이렇게 CVS에는 이미 미닛클리닉이 있기 때문에 HealthSpot에서는 CVS의 경쟁사인 Walgreens를 언급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minuteclinic Minute Clinic: You’re Sick. We’re Quick.

뿐만 아니라, 조금 더 생각해보면 이러한 가상 진료소가 세워질 수 있는 곳은 매우 많습니다. 일단 병원의 수가 적어서 환자들이 의료 혜택을 받고 있지 못한 지방이나, 도서산간 지역이 그 예가 될 것입니다. 또한 회사 측에서 밝히고 있는 것처럼, 일반 직장, 학교, 군대, 교도소와 같이 내부 구성원에게 의료 혜택을 제공해야 하지만, 내부에 별도의 병원을 만들기는 어려운 조직이라면 이러한 원격 진료소에 흥미를 가질 수 있을 것입니다.

 

어떻게 이용될 수 있을까?

시간과 장소에 구애 받지 않고, 저렴하고 간편하게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고 받을 수 있기 때문에 환자들은 물론 의사들도 이러한 서비스에 여러 효용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의사들은 자기가 원하는 시간과 장소에서 원격으로 진료를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재택 근무를 하고 싶거나, 은퇴를 앞두고 전원 지역에 살고 싶거나, 특정 시간에만 파트타임 근무를 하고 싶은 의사들은 이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을 것입니다.

또한, 원격으로 서비스가 이루어지기 때문에, 굳이 의사-환자가 같은 국가에 있을 필요도, 같은 시간대에 있을 필요도 없습니다. 미국은 과도한 의료 지출 때문에 의료비가 저렴한 다른 국가로 ‘의료 관광(medical tourism)’이 활성화 되어 있고, 심장 등의 표준화된 절차를 따르는 수술의 경우에 환자들은 수술비가 저렴한 인도 등을 방문하기도 합니다. HealthSpot 과 같은 서비스를 이용한다면 미국의 환자들이 (원격으로 미국 내에 있는 의사들 뿐만 아니라) 저렴한 가격에 인도에 있는 의사의 진료를 받는 모습도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더욱 상상력을 발휘해보면, 이런 서비스는 ‘사회적 의미’를 실현시키는 수단으로써 활용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즉, 의료 서비스를 제대로 받고 있지 못한 후진국에도 이러한 진료 스테이션을 세우면, 전 세계에서 진료를 희망하는 의사들이 아프리카에 직접 가지 않고도 환자들을 돌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전 세계의 의사들 중에 후진국의 환자들에게 의료 봉사활동을 하고는 싶지만, 몇달 혹은 몇년씩 자리를 비우고 아프리카에 가기가 부담스럽다면, 자기 집이나 오피스에서 하루에 30분 동안 원격으로 아프리카의 환자들을 진료함으로써 그런 봉사활동을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전 세계에서 이러한 노력이 모이면, 매우 큰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을 것임은 쉽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원격 기술을 이용한 ‘국경 없는 의사회‘ 와 같은 활동이 일어날 수 있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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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out The Author

디지털 헬스케어를 통해 의료를 혁신하고 세상을 더 건강하게 만들고자 하는 벤처투자자, 미래의료학자, 에반젤리스트입니다. 포항공대에서 컴퓨터공학과 생명과학을 복수 전공하였고, 동대학원에서 전산생물학으로 이학박사를 취득했습니다. 스탠퍼드 대학, 서울대학교병원 등에서 연구하였습니다. 현재 디지털 헬스케어 스타트업 전문 투자사, 디지털 헬스케어 파트너스 (DHP)를 2016년에 공동창업하였고, 대표를 맡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40여 개의 디지털 헬스케어 스타트업에 투자하였습니다. 네이처의 디지털 헬스케어 분야 자매지 『npj 디지털 메디슨』의 편집위원이자, 식약처, 심평원의 전문가 협의체 자문위원입니다. 『디지털 헬스케어: 의료의 미래』 『의료 인공지능』 『헬스케어 이노베이션』 등을 집필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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